초등생의 그림동화… 인터넷이 훈훈했다

  • 동아일보

‘행복한 콩’ 동화 그려 누리꾼 7600여 명 소액기부 이끌어낸 강일초교 이예진양

직접 그린 그림동화로 누리꾼 7600여 명으로부터 기부를 이끌어낸 이예진 양. 그래픽디자이너인 아버지 이봉제 씨가 컴퓨터로 마무리 작업을 도왔다. NHN 제공
직접 그린 그림동화로 누리꾼 7600여 명으로부터 기부를 이끌어낸 이예진 양. 그래픽디자이너인 아버지 이봉제 씨가 컴퓨터로 마무리 작업을 도왔다. NHN 제공
이 양이 그린 그림동화 ‘행복한 콩’. NHN 제공
이 양이 그린 그림동화 ‘행복한 콩’. NHN 제공
“콩 삼형제가 살았습니다. 첫째 콩은 커다란 콩이 되고 싶었어요. 둘째 콩은 많은 열매를 맺는 어른 콩이 되고 싶었죠. 셋째 콩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꿈이었답니다.”

처음엔 동화를 써오라는 학교 숙제에 불과했다. 이예진 양(서울 강일초6)도 그렇게 글을 썼다. 그런데 이 양의 아버지 이봉제 씨에겐 동화가 다르게 보였다. “이거 무슨 얘기니?”

딸은 “기부 얘기예요”라고만 말했다. 첫째 콩은 혼자 성공하고 싶은 사람을 뜻하고, 둘째 콩은 자기 가족만 챙기는 사람을 상징했다. 셋째 콩은 ‘행복한 콩’(해피빈)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해피빈’은 인터넷을 이용한 기부 포털사이트의 이름이다. NHN이 운영하는 네이버의 한 코너였는데 지금은 공익재단으로 분사해 기부 활동을 전담한다. 공익단체는 이곳에 기부를 받고자 하는 사연을 올리고, 기부자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소액을 기부한다. 이 양도 해피빈을 통해 기부를 해왔기 때문에 행복한 콩이 등장하는 동화를 쓰게 됐다.

해피빈 사이트에서 기부에 쓰이는 돈의 이름이 바로 ‘콩(빈·bean)’이다. 돈을 주고 살 수도 있지만 네이버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후원업체의 광고를 보면 1개에 100원짜리 콩을 한 달에 10개까지 받을 수 있다. 이를 기부하는 것이다.

그래픽디자이너인 아버지는 이 양의 글을 그림동화로 그려 보자고 했다. 그래서 이 양이 직접 스케치를 했고, 아버지가 컴퓨터로 색을 입혔다. 이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저시력 어린이를 함께 돕자”고 부탁했다. 그림책과 만화책, 소설책을 좋아하는 이 양은 “시력이 나쁜 어린이들에게 특수 확대경을 사줘서 책을 읽게 돕고 싶었다”고 했다.

이게 2월 초의 일이다. 며칠 뒤 NHN에서 전화가 왔다. ‘해피빈’ 사이트에서 벌이는 기부 캠페인에 이 양의 동화를 쓸 수 있겠느냐는 문의였다. 이 양은 흔쾌히 동의했다. 이 양의 그림동화가 해피빈 사이트에 걸리자 하루에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누리꾼들이 자신이 가진 콩 한두 개를 이 양의 캠페인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이 양은 “내 그림동화가 ‘2NE1’하고 ‘비’보다 더 많은 돈을 모금했다”고 자랑했다. 이런 기부 캠페인에는 이 양 외에도 가수 비와 원더걸스, 2NE1 등 유명인들도 참여한다. 2월 15일 모금이 시작된 후 이 양의 그림은 기부자 7600여 명으로부터 약 3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모았다.

이 양은 “기부가 어려운 게 아니란 걸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며 “네이버에 소개된 그림동화를 보여줬더니 반 친구들이 그전까지 자신이 갖고 있는 줄도 몰랐던 해피빈 콩을 하나 둘 기부하기 시작해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해피빈 서비스가 시작된 건 2005년 7월. 이렇게 쌓아온 누적 기부액이 지난달 30일 300억 원을 넘어섰다. 약 7년간 참여한 누리꾼은 820만 명에 이른다. 참여자 한 사람이 평균 약 3650원을 기부했다. 1년으로 환산하면 겨우 52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돈이 모여 많은 일을 해냈다. 지난해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와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 복구 등에도 기부금이 전달됐다. 지금도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거나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나라에 모기장을 사 보내는 데 쓰인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됐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이예진#해피빈#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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