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할 것 없다” 암투병에도 담담했던 어머니… 故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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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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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총서 내년초 출간… 장녀 호원숙씨에게 마지막 구술

호원숙 씨는 고 박완서 선생의 1주기 때 가톨릭 미사와 함께 전통적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평생 시부모와 남편의 제사를 모셔온 어머니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이라고 했다. 사진작가 이승무 씨 제공
호원숙 씨는 고 박완서 선생의 1주기 때 가톨릭 미사와 함께 전통적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평생 시부모와 남편의 제사를 모셔온 어머니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이라고 했다. 사진작가 이승무 씨 제공
“(아들을 먼저 보내면서) 단장(斷腸)의 아픔을 겪은 분이 실제로도 (수술을 위해) 자신의 몸에 칼을 대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에 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담담하셨죠. ‘암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유별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고 하셨어요.”

13일 오전 고 박완서 선생이 살던 경기 구리시 아천동 집에서 만난 고인의 장녀 호원숙 씨(57·수필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박완서 선생의 구술 기록을 담은 예술사 구술총서 ‘예술인·生’(수류산방) 박완서 편이 2012년 1월 말 고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다. 국립예술자료원이 2003년부터 예술계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원로 예술인을 선정해 그들의 생생한 구술을 기록으로 남겨온 사업의 일환이다. 고인은 2008년 두 시간씩 5회에 걸쳐 구술에 임했다. 이날 호 씨의 구술을 정리하면서 박완서 편 작업이 마무리된다.

호 씨는 완벽한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고인의 젊은 시절부터 힘겹게 암 투병을 하던 생애 말 모습까지 담담히 이야기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자녀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저희 다섯 남매에겐 공부가 모든 생활의 중심이었죠. 한번은 동생이 경기여중에 떨어졌는데, 어머니랑 제가 밤새도록 울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정작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요.”

1970년 ‘나목’이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당선돼 등단한 후에도 어머니 박완서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저녁상이 소홀해지는 일도, 장시간 집을 비우는 일도 없었다.

“책상도, 서재도 없었어요. 안방에서 작은 소반을 책상 삼아 글을 쓰셨죠. 글이 안 써지면 그저 정원을 가꾸거나 청소를 하셨죠.”

호 씨는 고인의 암 투병 생활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고인이 담낭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010년 가을 정기검진을 통해서였다. 곧바로 수술을 통해 담낭과 간의 일부분을 제거했다. 호 씨는 “어머니의 4개월 투병 기간은 어머니와 저희 딸 넷이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 계기였다”고 했다.

“그때 어머니 혈액형이 B형이 아니라 A형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요. 힘들었던 투병이었지만, 어머니도 저희 딸들도 서로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어요. 어머니는 수시로 ‘사랑하는 내 딸들. 고맙다’고 하셨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어머니는 행복하셨을 거예요.”

구리=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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