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 타계]병상서도 작품심사… 임종직전까지 불태운 ‘문학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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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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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 우수작 선정 참여… 천 작품 목록-심사평 남겨
“고인이 대상으로 꼽은 수상자… 朴선생님이 마지막 ‘찜한’ 작가”

강태형 문학동네출판사 대표는 한 달 전 박완서 씨에게서 예기치 않은 연락을 받았다. 입원을 하게 돼 심사를 하기 어렵겠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이 출판사가 시상하는 제2회 젊은작가상의 심사를 부탁받은 터였다.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차 이내의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작품 중 우수작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심사는 30, 40대의 젊은 문인과 50대 이상의 중견 및 원로 문인이 함께 참여한다. 담낭암 수술을 한 뒤 많이 회복되어 심사를 흔쾌히 받아들였던 박 씨는 그러나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심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박 씨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강 대표는 새로운 연락을 받았다. 박 씨가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었다는 것이었다. “추천하는 작품 목록과 심사평을 정리해서 보낼게요.” 고인에게서 작품 목록을 받기로 한 젊은작가상 최종 심사일, 강 대표는 박 씨의 부음을 들었다. 빈소로 달려간 강 대표에게 고인의 큰딸 호원숙 씨는 고인이 적어둔 작품 목록을 내밀었다. 추천작 7편, 그중 대상(大賞)으로는 소설가 김 씨를 꼽는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가 다수의 다른 심사위원에게서도 지지를 받았다는 최종 심사 결과도 강 대표는 전해 들었다. 22일 빈소를 찾은 김 씨에게 수상 결과를 통보하면서 강 대표는 “박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찜한’ 작가”라고 말했다.

고인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 읽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SF 작가 배명훈 씨가 제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을 때 박 씨는 이 작가를 대상 수상자로 강력하게 추천했다. 배 씨는 SF의 상상력에 사회 풍자적 시선을 더함으로써 본격문학에 충격을 준 작가다.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진 못했지만 박 씨는 이 작가를 향한 애정 어린 심사평을 적었다. “기성세대의 진부한 독법을 치고 들어오는 젊은 패기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배 씨는 “박완서 선생님의 심사평을 어머니가 읽으시더니 ‘네가 쓸데없는 짓하는 줄 알았는데… 뭔가 뜻있는 일을 하나 보다’ 하시더라”고 말했다.

박 씨가 세상을 떠난 22일 김연수 김중혁 박민규 편혜영 김애란 씨 등 젊은 작가들은 밤늦도록 빈소를 지켰다. 이들은 “선생님이 다음에 어떤 작품을 내실지 궁금했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 작품을 쓴다’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는 의미다. 젊은 작가들에게 고인은 단지 문단의 어른이자 선배 작가에 그치지 않았다. 팔순을 앞둔 지난해까지 산문집을 내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던 고인은 젊은 작가들의 동료였고 라이벌이었다. 고인의 죽음이 갑작스럽고 황망한, 그래서 더욱 쓸쓸한 이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동영상=박완서 “또다시 전쟁을 보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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