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죗값 씻고… 날 돌아보고… 흙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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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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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보호관찰소 관리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들 농촌서 봉사활동

사기 절도 상해 음주운전…
자숙차원 더 열심히 일해

일손 부족 농가 도움주고
깨 우침도 얻고 ‘일석이조’

24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먹골배 농가에서 서울보호관찰소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들이 농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배를 솎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보호관찰소
24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먹골배 농가에서 서울보호관찰소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들이 농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배를 솎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보호관찰소
24일 뙤약볕 아래 경기 남양주시 먹골배 농가를 찾은 일꾼들이 병충해 방지를 위해 나무기둥에 황토를 바르고 있었다. “거긴 뭐 하다 잡혔어요?” “전 사업하다가 좀….” “사기 쳤구나?” 최모 씨(53)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으며 말없이 피식 웃었다. 최 씨가 입은 진회색 조끼에는 ‘법무부 사랑나눔봉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날 농촌봉사활동에 나선 8명은 서울보호관찰소에서 관리하고 있는 사회봉사명령 대상자. 20대에서 50대까지 나이도 다르고 사기, 절도, 상해,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등 전력도 다양한 이들은 경기 남양주시와 구리시 농가들로 함께 농촌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다. 법원에서 부가 받은 사회봉사활동의 일환이다.

올해 4월 1일 법무부는 농협과 ‘사회봉사 대상자 농촌지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동안 띄엄띄엄 이뤄지던 농촌봉사활동을 처음으로 지속적인 사회봉사활동으로 체계화한 것. 서울보호관찰소는 양해각서에 따라 4월 29일부터 서울 인근 남양주시와 구리시를 찾아 농협지부와 협약을 맺고 두 달간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9시간씩 ‘농활’에 나서고 있다. 하루 100여 명씩 그동안 총 2900여 명이 남양주시와 구리시의 일반 농가를 찾았다.

처음 단위농협으로부터 지원 농가를 모집했을 때는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농협중앙회 남양주시지부 우상원 차장은 “처음에는 ‘전과자’라는 생각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꺼리는 분들도 계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지원 농가가 많아 신청을 다 못 받아줄 정도다. 한 달째 사회봉사 대상자들의 도움을 받아온 이영진 씨(54)는 “희망근로자, 외국인노동자들 다 겪어 봤지만 이분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없다”며 “자숙하는 차원에서 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고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몰다 480시간 봉사 명령을 받은 정모 씨(20)는 “서울에서만 살아 농사일에 생소한데도 즐겁다”며 웃었다. 벌써 120시간을 채운 정 씨는 “이러다 귀농할지도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배가 굵어가는 것을 보면서 책임감도 들고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특수절도혐의로 120시간 봉사명령을 받은 동갑내기 오모 씨(20·여)는 함께 일하면서 정 씨와 친해졌다. 오 씨는 “처음에는 억울하게 잡혀왔다는 생각에 화도 났지만 공기 맑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농가 주인인 이 씨는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하고 인건비도 비싸 걱정인 농가에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여러 사회봉사가 다 의미 있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일하며 훈훈한 농심(農心)에서 인간미를 배울 수 있는 농촌봉사활동은 색다른 깨우침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봉사자가 “봉사시간이 끝나도 배 수확할 때까지 다니겠다”고 말하자 다른 봉사자들이 “그러자”고 외치며 껄껄 웃었다.

남양주=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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