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법원 판결과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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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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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식 어긋난 판결… 사법부 독립이 고립 뜻하진 않아

사법부, 위기의식 갖고 스스로 변화해야
언론, 감정적 보도 대신 논거 따져 비판을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 위원들이 23일 오후 회의를 끝내고 ‘일민 김상만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동아미디어센터 1층 로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태서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 윤영철 위원, 정성진 위원장, 이민웅
위원, 박명식 동아일보사 미디어연구소장,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변영욱 기자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 위원들이 23일 오후 회의를 끝내고 ‘일민 김상만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동아미디어센터 1층 로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태서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 윤영철 위원, 정성진 위원장, 이민웅 위원, 박명식 동아일보사 미디어연구소장,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변영욱 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및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시국선언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재판부에 따라 유무죄로 엇갈리고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폭력 사건과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명예훼손 사건의 무죄 선고 등으로 법원의 판결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법관의 이념 편향성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사법 개혁이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23일 ‘법원 판결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일련의 판결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이고 언론의 보도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를 토론했다.》

―최근 문제가 된 여러 판결이 아직 진행 중이라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논란을 정리하고 독자들에게 이해의 단서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논의했으면 합니다.

정성진 위원장=과거에는 1심 판결 결과를 비판하는 기사가 이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상식과 어긋난다는 데서 출발해 법관의 경력, 임명과 관련된 사법 개혁으로까지 발전됐습니다. 또 이념 문제와 결부해 우리법연구회와 관련한 논란까지 일었습니다. 이런 논란이 법관의 책임성 문제를 제기했다고 봅니다.

이민웅 위원=사법부는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지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건 모두 1심 판결입니다. 이 판결들은 사실 심리, 즉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판단을 내리는 건데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국민의 시각으로 보면 한두 건도 아니고 연이어 네댓 건의 판결이 ‘문제’가 됐습니다. 어떻게 일반 국민의 법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판결을 연이어서 내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법부의 독립이 고립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이 전례 없이 크게 보도한 것은 수긍할 만합니다.

윤영철 위원=이번 판결들은 대립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 현상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논란을 부른 판결이 잇따랐고 많은 언론이 이를 비판했습니다. 행정 입법 사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도 있겠지만 제4부로 일컬어지는 언론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언론이 법원 판결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언론의 비판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여론을 환기하는 것도 정상적인 여론 형성 과정입니다. 아쉬운 것은 일부 감정적으로 흐른 면이 있다는 겁니다. 판결의 논거를 차분하게 따져서 그 타당성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건설적입니다. 다만 일부 보도에서 판사가 어떤 보직을 지냈고, 누구와 가깝고, 어떤 모임에 든 적이 있느냐를 따지고 그게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한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같은 사안에 대해 이 법관은 이렇게, 저 법관은 저렇게 판결해도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PD수첩 사건을 예로 들면 민사와 형사 재판부가 사안을 판단하는 성격은 다릅니다. 결론은 다르더라도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데 들쭉날쭉한 인상을 줘서는 안 됩니다. 엇갈리는 판결이 나온 토대에는 일부 특정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 사실관계를 좀 더 신중하게 확인하지 않고 판결해 버리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언론이 지적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법이 심판관으로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이므로 사법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보도했습니다.

정 위원장=판결에 나타난 논리 구조나 그 바탕의 법관 생각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에 따른 심판이 주관적 이념, 가치관에 따라 국민의 상식과 보편적인 법 감정과 어긋나게 되는 것은 법관들 스스로가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관의 양심은 합리적이고 법조적이며 사회 통념 및 상식과 부합돼야 합니다. 사법부로서는 위기의식을 갖고 사법권 독립이라든가 사법의 신뢰성, 책임성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위원=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22일 ‘재판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이뤄져야 하지만 양심은 보편타당한 것이어야지 독단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된다’라면서 우리 사회의 상식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법관의 양심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언론의 정당한 문제 제기에 뒤늦게나마 반응한 것입니다.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모든 영역이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데 법원은 독립이라는 명분 아래 판사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순번제로 사건을 배당한다고 합니다. 이런 운영 방식이 독립이 아닌 독단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법원이 왜 전문 판사제를 도입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정 위원장=법원이 나름대로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부정 경쟁, 파산 등 전문성이 필요한 문제엔 전담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문제는 과거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독립성이 훼손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사회 각 분야가 신뢰와 변화,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이젠 법원도 독립성 못지않게 책임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법원도 변해야 합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는 식의 도식적, 형식적인 판결은 지양해야 합니다. 법원이 흔히 쓰는 표현인데 국민은 기교, 형식논리라고 느끼게 됩니다. 이번에 문제 된 판결을 들여다보면 결론에 맞춰 논리를 전개해 가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식으로는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무리가 있습니다.

이 위원=명예훼손죄 면제 사유로는 공익성 상당성 진실성이 있는데 이번 PD수첩 판결을 보면 ‘허위라고 볼 수 없으므로’라고 하여 진실성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PD수첩 스스로 정정보도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언론학도로서 허위보도까지 언론자유의 범위에 포함시켜 준 판사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죄 판결의 논거로 공익성과 상당성보다 진실성에 더 의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윤 위원=한 인터넷 사이트의 토론방을 들여다보니 많은 누리꾼이 참여해 토론을 벌이다가 결론을 딱 냈습니다. 굳이 PD수첩 명예훼손을 무죄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허위보도이지만 공익성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무죄’라고 해야 맞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른바 집단지성입니다. 이걸 보면서 판결문 같은 자료가 모두 공개되는 상황이니 만큼 사법부 스스로의 판단이 최고이며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원의 판결을 보도할 때 언론이 주의해야 할 점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인터넷에서는 일련의 법원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만 국민 법 감정에 어긋난 판결이 나왔다고 함부로 비판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간혹 보였습니다.

윤 위원=법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합니다. 그러나 그 판결을 비판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다만 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냉철하게 해야 합니다. 판사를 위협하는 등 물리적인 행동 차원으로 나타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데까지 허용돼서도 안 됩니다.

이 위원=언론은 사법부보다 더 마지막에 있는 민주주의의 보루입니다. 법원의 잘못을 언론이 지적하지 않으면 공론화도 되지 않습니다. 언론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대법원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는 활발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언론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정 위원장=신문윤리강령은 신문의 자유 독립과 함께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법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독립을 강조해 왔지만 권위주의 정권이 사라진 지 20년 가까이 된 만큼 이제는 책임성을 높여야 합니다. 신뢰의 위기가 권력이 아니라 국민 여론에 의해서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독선화 경향을 불식하고 국민이 수긍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법부가 되기 바랍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참석자>
○ 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 위원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최영훈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김동철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명식 미디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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