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연극女왕]1월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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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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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발톱’ 세운 섬뜩한 감성 퀸

감수성-분석력 겸비 관객공감 끌어내
작품놓고 연출가와 논쟁하는 ‘파이터’

《국내 연극계에서 좋은 배우는 많지만 좋은 여배우는 드물다고 한다. 우아한 여배우로서 무대를 지키기 어렵다는 뜻이다.
좋은 여배우가 많이 나올수록 연극계가 풍성해질 수 있다는 기대이기도 하다. 동아일보 공연팀이 평론가의 추천을 받아 독자적 브랜드 가치를 갖춘 스타급 여배우를 한 달에 1명씩 조명한다.
‘이달의 연극여왕’으로는 김선영 씨가 뽑혔다. 》
(추천해주신 분=연극평론가 김미도 허순자 씨, 연극연출가 이병훈 씨)

‘뷰티 퀸’의 주연배우 김선영 씨는 물과 불이 섞인 술과 같은 배우다. 냉철한 인물 분석과 풍부한 감수성이 하나로 발효된 연기 때문일까. 그가 형상화한 인물은 포장마차에서 한 번쯤은 만났음 직한 이들이다. 홍진환 기자
‘뷰티 퀸’의 주연배우 김선영 씨는 물과 불이 섞인 술과 같은 배우다. 냉철한 인물 분석과 풍부한 감수성이 하나로 발효된 연기 때문일까. 그가 형상화한 인물은 포장마차에서 한 번쯤은 만났음 직한 이들이다. 홍진환 기자
들고양이를 닮았다. 거칠지만 유연하고, 본능에 충실하지만 쉬이 길들여지지 않고, 자유롭지만 외롭고…. 1월의 여배우 김선영 씨(34)다. 김 씨는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뷰티 퀸’의 주인공 모린 역으로 1월의 ‘스테이지 퀸’으로 꼽혔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주인공이지만 그렇게 빼어난 미모가 필요한 배역은 아니다. 아일랜드 시골 미인대회 여왕 출신이지만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사느라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연애 한 번 못하고 시들어 가는 노처녀다. 모린은 자신의 처지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그를 필요로 하는 노모가 쳐놓은 관계의 덫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때마다 발톱을 세우고 이를 드러내지만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1월의 여배우로 그를 추천한 연극평론가 허순자 씨는 “때론 억압적이고 때론 육감적이고 때론 섬뜩한 모습을 균형 잡히고 절제된 연기로 표현해 냈다”고 평했다. 평론가 김미도 씨는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희극과 비극이 뒤섞인 정신분열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해 인상적 연기를 펼쳤다”고 밝혔다.

한림대 철학과 95학번인 김 씨는 2000년 공연예술아카데미 졸업 공연작품인 ‘연극이 끝난 후에’에 출연한 이후 배우로 10년을 살았다. 그러나 특정 극단이나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탓인지 1년에 한두 편의 작품밖에 못했다. 2004년 ‘안녕, 모스크바’의 알코올의존증 환자 안나 역과 2008년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서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를 갖고자 하는 선미 역으로 주목을 받았다. 독일 번안극인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연극열전3 작품으로 선정돼 8월부터 장기공연에 들어간다.

과작(寡作)임에도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비결은 뭘까. ‘경남…’의 연출가 류주현 씨는 감성이 풍부하면서도 작품 분석력이 뛰어난 점을 꼽았다. “감성이 풍부한 배우는 분석력이 떨어져 연출에게 휘둘리고, 분석력이 뛰어난 배우는 감성이 메마른 경우가 많은데 선영 씨는 양자를 겸비한 배우다.” 국내 연출작 네 작품 모두에 김 씨를 기용한 ‘뷰티 퀸’의 연출가 이현정 씨는 “관객이 자신과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외모만큼이나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유연하면서도 빠르게 소화해 낸다”고 말했다.

정작 김 씨 자신은 연기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게 한이라고 했다. “연극반 시절부터 연출이 뭔지도 모르면서 연출을 지망하다가 뒤늦게 연기에 눈을 떴어요.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연기를 배웠지만 그때 남자친구랑 헤어진 충격에 수업은 다섯 번이나 들어갔나? 그때 연기를 가르치신 분이 예수정 선생님이었는데 졸업 후 예 선생님 연기를 보고 제가 수업 안 들어간 것을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했는지 몰라요.” 그후 예수정 씨의 출연작은 빼놓지 않고 보면서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았단다.

배우 김선영은 그렇게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이 섞여 있다. 작품 분석을 놓고 연출가와 논쟁을 마다하지 않아 ‘파이터’란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이 수긍을 하고 나면 냉철할 정도로 계산된 연기를 펼친다. “세 줄짜리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4호선 혜화역에서 종점 오이도역까지 그 대사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간 적도 있어요.”

김 씨는 꼭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체호프 작품이라면 모두”라고 답했다. 연극판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제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박”이라고 말했다. “저 진짜 가난하거든요. 그래서 우아한 여배우와는 담 쌓았어요. 그래도 어떡해요. 연기가 너무 좋은걸.”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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