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농사’ 짓는 50대 천사

  • 입력 2008년 7월 25일 02시 59분


“어려운 이웃에게…” 수차례 수천만원어치 쌀 기탁

“그저 돕고 싶을 뿐…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

21일 충남 천안시청 주민생활과에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50대 후반의 이 아주머니는 1000만 원 상당의 농협 쌀 쿠폰(20kg들이 236포)을 기탁한 뒤 불과 5분여 만에 달아나듯 돌아갔다.

지정 기탁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이 아주머니는 “그냥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만 했다. 행정 절차상 필요하다는 직원 요구로 기탁자 대장에 인적사항을 적었지만 “절대 알려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직원들은 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불과 사흘 전인 18일에도 사무실로 찾아와 10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불쑥 내밀었던 아주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일봉산 공원에 올랐는데 약수터에서 팔각정까지의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노인들이 다칠 것 같다”며 “이 돈으로 등산로를 정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의 등산로 정비 계획이 있다”며 수표를 돌려주려 하자 이 아주머니는 “아무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니 알아서 써 달라”며 그대로 사라졌다.

직원들은 그를 수소문해 찾아가 “등산로를 다음 달까지 꼭 정비하겠다”며 사정하다시피 돈을 돌려줬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돈으로 쌀 쿠폰을 구입해 찾아온 것.

천안시가 파악한 결과 이 아주머니는 1999년에도 1600만 원어치의 쌀을 구입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시에 기탁했다. 또 2000년경에는 3개월 동안 공공근로사업으로 번 100만여 원으로 쌀을 구입해 주변에 나눠주기도 했다.

취재 결과 그는 천안시 성남면 화성리에서 1800m²가량의 논밭 농사를 짓는 심모(58) 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시 관계자는 “감사패라도 드리고 싶다고 했으나 심 씨가 ‘돈을 쌓아 놓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저 마음이 가서 돈을 내놓는 거니 그러지 말라’며 극구 사양했다”고 말했다.

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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