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당시 일기 모아 책 낸 이현희 교수

  • 입력 2008년 6월 2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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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폭격기를 향한 북한군의 지상 대포 소리가 울리고 나면 파편 덩어리가 우수 떨어진다. 그 쇳조각이 오늘은 바로 발 앞에 탁 떨어졌다. 머리에 맞았으면 어땠을까. 파편이 휩쓸고 간 뒤 널린 시체를 보면 죽고 사는 게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1950년 7월 4일)

열세 살 소년의 눈에 비친 '함락된 서울'의 일상이다.

성신여대 이현희(71) 명예교수는 1950년 6월 25일부터 그해 9월 28일까지 겪었던 90일의 체험을 빠짐없이 적었다. 당시 이 교수는 나치를 피해 다락방에서 일기를 썼던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 동갑이었다.

2006년 그는 먼지가 쌓여가던 58년 전 전쟁 일기를 다시 꺼냈다. 중고생 절반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었다. 세월에 희미해진 글씨를 기억으로 되살리는데 2년이 걸렸다. 그의 일기는 '내가 겪은 6.25전쟁 하 서울 90일'이라는 제목으로 25일 출간됐다.

전쟁 당시 이 교수의 가족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살았다. "북괴군을 격퇴했으니 동요하지 말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방송을 믿었다가 피난시기를 놓쳤다.

두 형은 북한군 의용군으로 끌려갈까봐 다락방에 숨어 지냈고 누이들도 폭격 위험에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식량을 북한군에게 모조리 공출당해 이 교수는 45km 떨어진 파주 큰 집까지 하루 종일 걸어가 보리를 얻어오곤 했다.

전쟁의 광기는 어린 그에게도 덮쳤다. 이화여대 의대에 다니던 큰 누나는 학교 앞에서 폭격에 맞아 숨졌고 소화마비를 앓던 막내 동생도 굶어죽었다.

"집 앞 방공호에 가니 천진난만한 풀빛 얼굴을 한 소년병이 피를 쏟고 있었다. 평양에서 1주일간 총 쏘는 훈련만 받고 내려왔다고 했다. 혁대를 풀어 지혈을 한 뒤 구급약을 가지고 나왔을 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마니'가 보고 싶다는 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1950년 8월 25일)

"그날 흘린 눈물이 평생 마음 속 숙제로 남았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50년 넘게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고희의 학자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으로 그는 아직도 숙제 중이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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