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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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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삼성트레이닝센터 내 삼성화재 배구단 연습장.
신치용(53) 감독은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말끔한 양복에 냉정한 눈빛으로 코트를 바라보던 모습과는 달랐다. 겨울리그 10회 우승을 한 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였다.
신 감독은 크로아티아 용병 안젤코 추크와 함께 대체 요원 없이 고군분투한 세터 최태웅(32)을 우승 일등공신으로 꼽았다. 9년째 사제의 정을 쌓은 엄한 스승과 고집 센 제자의 솔직 담백한 대화를 들었다.
○ 포옹
신 감독=우승이 확정된 순간 긴장이 풀려 벤치에 앉았는데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이 다가오더군.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김 감독이 축하 인사를 하며 나를 꽉 안았다. 나는 김 감독에게 귓속말로 “(패배를 멋지게 인정한) 너는 진짜 프로다”라고 말했지.
최태웅=우승 직후 감독님과 포옹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어요. 올 시즌을 앞두고 “태웅아, 이번이 마지막(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죠.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에 무릎을 꿇었던 아픔 등이 영화처럼 떠오르더군요.
○ 사람
신 감독=대학 대표 때 나는 레프트 공격수, 김호철 감독은 세터였어. 그런데 나는 한국전력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세터를 했으니 전천후 선수였던 셈이다(웃음). 배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거고 수비와 리시브 등 기본기와 팀워크가 얼마나 탄탄한지가 1등과 꼴찌의 차이다.
최=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20여 일간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장병철과 안젤코가 부상을 당해 분위기가 엉망이었지만 더 연습에 매달렸죠. 챔피언 결정전 1차전 2세트에서 18-22로 지다가 25-23으로 승부를 뒤집으면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고 3세트도 연장혈투 끝에 41-39로 이길 수 있었죠.
○ 백곰과 고집쟁이
신 감독=태웅이는 프로 초기에는 자기 고집이 세서 나한테 많이 혼났지. 그래도 비디오를 보며 상대팀 연구를 많이 하는 자세가 좋았다.
최=선수들 사이에서 감독님 별명은 백곰이에요. 저도 감독님처럼 말은 아끼고 선수 스스로 잘못을 고치도록 유도하는 지도자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신 감독은 “내년 시즌 역시 현대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지만 우리도 열한 번째 우승이 목표”라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앞으로 3년은 더 감독을 해야죠. 태웅이 후배들로 세대교체를 시킨 뒤 멋지게 물러나고 싶습니다.”
용인=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