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은 나의 운명… 3주연속 세계1위 남현희 인터뷰

  •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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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기자
김미옥 기자
키 154cm에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가냘픈 몸매. 검(劍) 한 자루 달랑 들고 한 달 넘게 유럽을 돌았다. 그 사이 국제펜싱연맹(FIE)이 발표하는 플뢰레 여자 세계랭킹에서 3주 연속 1위에 올랐다.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25일 프랑스에서 막을 내린 국제그랑프리대회 등 2개 메이저 대회에서 준우승한 뒤 귀국한 남현희(26·서울시청·사진)를 만났다.

그는 “세계 1위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해 성형수술 파문을 이겨내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남현희의 스물여섯 해 삶을 들여다본다.

●싸움닭

작은 키 때문에 ‘땅콩’으로 알려졌지만 원래 제 별명은 ‘싸움닭’이에요. 평소에는 순하고 선후배와 잘 어울리지만 경기장에만 나서면 나도 모르게 투사가 되죠. 지는 걸 싫어하는 승부사 기질이 발동해서 그래요.

외국 선수는 저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크지만 두렵지 않아요. 빠른 발로 움직이면서 수비를 하다가 상대방의 빈 곳을 찌르죠. 검으로 정확히 가격했을 때의 쾌감이란….(웃음)

●독종

해외에 머무는 동안 휴대전화 해외 로밍(통화 영역을 넓히는 서비스)을 하지 않았어요. 한국에 전화를 하면 한국 생각이 나서 운동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죠.

6년째 남현희를 지도하고 있는 조종형 서울시청 감독은 “현희는 아무리 아파도 하루 6시간 연습을 꼭 지킬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고 말했다.

●잊지 못할 추억

한국 펜싱 역사상 첫 금메달을 차지한 2005년 독일 세계펜싱선수권 여자 플뢰레 단체전이 기억에 남아요. 루마니아와의 결승전에서 18-19로 지고 있을 때 제 차례가 됐어요. 상대방의 허점을 이용한 몸통 공격이 성공했고 20-19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죠.

●성형

평소에 왼쪽 속눈썹이 눈을 찔러 염증으로 고생했어요. 병원에 갔더니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게 낫다고 하더군요. 성형수술 직후 비난이 쏟아졌지만 말없이 연습에 매달렸죠.

지난해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펜싱 플뢰레 개인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야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지더군요. 솔직히 억울한 마음도 있어요. 여자가 예뻐지고 싶어 성형수술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운동선수가 성형하면 죄가 되는 건지….

●사랑 그리고 미래

동갑내기 남자 친구인 원우영(국가대표 펜싱 선수)과 고등학교 때부터 9년째 사귀고 있어요. 같은 운동선수여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죠. 결혼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생각해 봐야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펜싱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미래의 펜싱 세계랭킹 1위 선수를 키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죠.

●14세 소녀 검을 잡다

성남여중 1학년 때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어요. 그런데 체육시간에 멀리뛰기 1등을 했죠. 체육 선생님이 “발이 빠르고 몸이 유연하니 펜싱을 한번 해 보라”고 권한 게 펜싱과의 첫 인연이 됐어요.

펜싱은 전후좌우로 움직이면서 검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동작이 재미있었어요. 고된 훈련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연습 때 울더라도 시합에서 웃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네요.

남현희는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실업연맹회장배 펜싱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다리 부상 때문에 경기에는 못 나가지만 동료 선수들을 응원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그가 ‘작은 거인’처럼 느껴졌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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