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늘은 천사를 먼저 데려가는 걸까요"

  • 입력 2006년 12월 20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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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속에서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구한 뒤 아들을 구하려다 숨진 권 씨의 영정.
화재 속에서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구한 뒤 아들을 구하려다 숨진 권 씨의 영정.
《얘들아 괜찮니? 몸 불편한 너희들이 얼마나 놀랬을까

엄마가 미안해 남들처럼 넉넉치 않아도 너희들 소중히 보듬고 이 세상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먼저가서 미안해》

"왜 하늘은 천사를 먼저 데려가는 걸까요."

부산 동래구 온천3동 광혜병원 영안실. 세상에 둘도 없던 천사 같은 아내 권모(46) 씨를 화마(火魔)에 빼앗겨버린 박인호(47) 씨는 "그렇게 선하게 살더니만 왜 갔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남편으로서 가슴속에 묻어 뒀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준 게 이렇게 한이 될 줄 몰랐다.

19일 오후 7시 반경 부산 동래구 온천3동 전셋집에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은 박씨는 경남 양산의 직장을 나서 부랴부랴 집에 도착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아내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버렸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했던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떠난 지도 모르는 아들(15)은 병원침대에 누워 눈만 껌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 권 씨는 집에 불이 나자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과 딸(18)을 살린 뒤 자신은 끝내 불길을 헤쳐 나오지 못해 저세상의 몸이 된 것.

"자식한테 만큼은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정상인과 다르지 않게 키우고 싶어 아들을 일반 중학교에 입학시킨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하교를 시켰지요. 초등학교만 졸업한 딸은 자신이 직접 집에서 가르쳤어요."

권 씨는 불이 나자 끔찍이도 사랑했던 딸을 집 밖으로 대피시킨 뒤 출입문 반대편의 화장실에 간 아들을 구하려 다시 들어갔다 연기에 질식돼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온몸으로 불길 속에 뛰어든 어머니의 정성 때문인지 다행히 욕실에는 불이 크게 붙지 않아 아들은 얼굴에 2도 화상만 입었다.

권 씨 가족은 경남 김해에서 살다가 특수교육 기관인 발달장애연구소가 있는 부산으로 11년 전 이사했다.

권 씨는 아들과 딸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병원과 장애인학교 등을 오가며 재활을 시도했다. 그러나 남편의 한 달 소득 150만 원으로는 자식들의 재활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자식들을 '정상인'으로 키울 수 있다는 집념으로 화장품 외판원을 했다.

그러면서도 끼니를 챙겨주기 위해 점심때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학교를 마칠 때면 교문 앞에서 아들과 딸을 기다렸다.

고달팠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고 이웃에서 시샘할 정도로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이웃주민 김모(44) 씨는 "최근에는 살이 찐 딸의 체중을 조절한다며 저녁마다 인근 공원에서 함께 달리기를 하는 어머니였다. 자식들에게 애정이 깊었고 가난하지만 구김 없이 사는 가정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남편 박 씨는 "그 사람은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궂은 일 다 하면서 자식들을 챙겼다"며 "이제 자식들을 어떻게 키울지 눈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동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빈소로 달려온 김정숙(56) 씨는 "천사처럼 살던 동서가 왜 먼저 가야하느냐"며 고개를 떨구었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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