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팔로 던진 ‘희망의 창’… 허희선씨의 값진 은메달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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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창아. 내 희망을 싣고서.” 13일 전주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육상 남일반부 창던지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허희선이 한 팔로 창을 던지려 하고 있다. -전주=안철민기자
“날아라, 창아. 내 희망을 싣고서.” 13일 전주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육상 남일반부 창던지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허희선이 한 팔로 창을 던지려 하고 있다. -전주=안철민기자
“창이 손끝을 떠나 푸른 하늘을 가를 때 ‘짜릿한 희망’을 느낍니다.”

제84회 전국체전 육상경기가 열린 13일 전주종합경기장. 남자일반 창던지기에서 75m57을 던져 은메달을 따낸 허희선(22·경성대)은 모처럼 검게 그을린 얼굴을 펴고 활짝 웃었다.

5년 동안 전국체전에 출전한 끝에 최고의 성적. 진주고 시절 동메달을 딴 게 전부였던 그는 “꼭 우승하고 싶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에 만족한다”며 목에 건 은메달을 어루만졌다.

그는 오른손 손목 아래가 없어 왼손으로 창을 던지는 장애인 선수. 세 살 때 형과 장난하다 여물 써는 작두에 오른손을 잃은 그는 중거리 선수로 육상과 인연을 맺었다가 고교에 입학하면서 창을 들었다.

창을 던질 때 창을 잡지 않은 손은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추의 역할을 한다. 허희선은 “오른손이 없어 균형을 잡기 어렵다 보니 창에 온힘을 실을 수 없어 거리에서 3m 정도는 손해 보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체력 훈련에도 어려움이 많다. 누워서 바벨을 드는 웨이트트레이닝은 창던지기 선수의 필수 코스. 그러나 한 손이 없다 보니 훈련을 제대로 못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

이날 결선 4차 시기에서 75m57을 던져 1위를 달렸던 허희선은 5차 시기에서 76m27을 던진 박재명(22·한체대)에게 추월당했다. 그러나 그는 체력이 떨어져 5차 시기를 포기했고 마지막 6차 시기에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창을 던졌지만 실격 당했다.

“훈련을 많이 하면 어깨 허리 관절이 심하게 아픕니다. 그럴 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연습하곤 해요. 경기 때도 6차 시기를 모두 던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힘을 안배하는 게 중요하지요.”

허희선의 최고기록은 9월 부산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세운 77m33. 박재명의 한국최고기록 81m46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멈출 생각이 없다.

“필드에 들어서면 내가 이기나 창이 이기나 하는 오기로 창을 잡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해야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아요. 한국기록을 깰 때까지는 선수생활을 그만두지 않을 작정입니다.”

이날 빗속에서 가슴 졸이며 제자의 경기 모습을 지켜본 황선건 감독은 “희선이의 불굴의 도전정신은 다른 선수들의 훈련에도 귀감이 된다”며 대견해했다.

전주=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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