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자를 아는 지인들은 그를 매우 치밀한 ‘중국통(通)’으로 기억하고 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 샤오핑(鄧小平)의 사망사실을 특종한 것도 중앙일보의 풍부한 물적 지원이 토대가 되기는 했지만 그의 주도면밀한 정보원 관리의 산물이었다는 것.
정치권에서 문기자를 잘아는 한 인사는 “그가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회장과 장쩌민(江澤民)중국국가주석의 면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도 평소 장주석 측근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라고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92년 대선 당시 공공연하게 ‘반(反)YS’ 노선을 견지할 만큼 정치적이었다는 게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다. 그가 이부총재와 ‘기자―취재원’ 이상의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이같은 ‘정치성향’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정권교체 이후 ‘친(親)DJ’성향을 보였다는 점, 그러면서도 홍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점, 이부총재와 ‘기자―취재원’ 이상의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 등 문기자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그의 문건작성 동기를 헤아리기가 매우 어렵게 하는 변수들이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