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작가 최명희 별세]암투병속 치열한 창작혼

  • 입력 1998년 12월 12일 08시 07분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崔明姬·51)씨가 11일 오후 5시경 입원중인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인 난소암으로 별세했다. 90년대 한국문학사에 최고의 문학적 성과를 남긴 채 혼불처럼 살다가 혼불처럼 스러져간 것이다. 최씨가 암에 걸린 것은 혼불 완간을 4개월 앞둔 96년 8월경. 그는 그러나 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소설 집필에만 매달렸다.

96년 12월 드디어 2백자 원고지 1만2천장 분량의 ‘혼불’ 10권이 완간되어 세상에 나왔다. 17년에 걸친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탈진과 혼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올 10월초 서울대병원에서 암수술을 받아야 했다.

소설 ‘혼불’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착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했다.‘혼불’을 위해 결혼도 미루었고 암 선고를 받고도 탈고를 눈 앞에 둔 4개월동안 한번도 편하게 자리에 눕지 않았다.

‘혼불’은 90년대 한국 문학의 최고 성과로 평가받아왔다. 이 소설의 무대는 1930년대 전북 남원. 몰락해가는 한 양반가를 지키는 며느리 3대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힘겨웠던 삶과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다. 어둡고 억눌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꺼져가는 혼불을 환하게 지펴올린 해원(解寃)의 한마당이었다.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는 그의 말이 작품으로 표출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평론가들도 이 작품을 우리 민족혼의 원형이라 불렀다. 특히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을 결고운 언어로 생생하게 복원해냄으로써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47년 전주에서 태어난 최씨는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등단 직후 ‘혼불’을 쓰기 시작해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제1부)이 당선됐다. 그리고는 88년부터 95년까지 무려 7년2개월동안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5부를 연재했다. 그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1년에 걸쳐 정밀하게 보완, 96년 10권을 완간했다.

유족으로는 동생 다섯. 발인은 15일 오전5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지는 전북 전주시 건지산 덕진공원 내 최명희 문학공원. 02―3410―2114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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