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가까이 그와 친교하면서 정치뿐만 아니라 인간생활, 가정의 삶에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서로 상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나는 인지를 붕우(朋友)라기보다는 스승으로서 외경(畏敬)하여왔다. 아! 슬프도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하였거늘 어찌 이다지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리. 내 평생 단 두번 인지로부터 모진 꾸중을 들은 지난 이야기 한토막을 회상(回想)코자 한다. 한번은 80년대 내가 국회의장일 때고 또 한번은 거대여당의 대표일 때다. 통치권자의 강권에 못이겨 인지를 찾았다. 인지 고흥문을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중 본인이 택하는 자리로 승낙을 받으라는 사명이었다. 인지의 안색이 험악해졌다. 노기를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채형, 나는 실망하였소. 그래도 당신만은 믿었는데…. 나 고흥문은 정계를 떠난다고 하였는데…. 감투가 무엇이기에 말을 뒤집어!”
나는 무안하고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면서 황망히 도망쳐 나와야 했다. 이제 다시금 그대의 개결함과 그대의 군자대인(君子大人)다움이 돋보여진다.
인지 고흥문선생은 비록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그를 아는 벗과 후학들은 그를 거울삼아 길이 명복하심을 빌 것이오.
채문식(고려대 재단이사장·전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