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귀순한 정현(鄭顯·32)씨를 좇아 최근 탈북에 성공한 정씨의 어머니 장인숙(張仁淑·56)씨와 동생 용(龍·27) 남(男·24)씨는 탈북귀순자가족에 대한 탄압에 시달리다 탈북을 결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씨의 어머니 장씨는 평양 운수대학 교량터널과 출신의 설계사로 주체사상탑 설계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김정일표창과 국기훈장 등을 받은 북한의 엘리트 여성. 정씨의 아버지 정순성씨는 인민경비대 대좌로 복무하다가 78년 9월 사망했다.
또 용씨는 만경대혁명학원과 경성비행군관학교를, 남씨는 평양보통강제1고등중학교를 각각 다녔을 만큼 이들 가족은 북한사회의 핵심계층에 속했다.그러나 90년 8월 정현씨가 한국으로 귀순한 뒤 장씨는 그해 12월말 아들 남씨와 함께 함경북도 온성으로 쫓겨났고 경성비행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용씨도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그후 장씨는 탄광설계사업소 설계원으로, 용씨는 종이공장과 닭공장 노동자로, 남씨는 철도선로원으로 각각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장씨에게)귀순 동기는….
『처음엔 현이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으나 93년 여름 그 애가 일본 TV에 통역요원으로 나왔다는 얘길 전해 듣고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후 제삼국 교포를 통해 현이 소식을 들었고 몇차례 헌 휴지나 코푼 종이로 위장한 편지를 주고받던 끝에 한국이 좋으니 귀순하라는 권유를 받고 결행했다. 지성인으로서 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둘째 아들 광(光·30)씨는 함께 오지 않았는데….
『(울먹이며) 그 애는 최근에 결혼했기 때문에 처가도 걸려 있고 해서 함께 오지 않았다』
―(장씨에게)외부에서 보낸 구호식량이 도착하면 북한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나.
『식량전달 대표단에게 「도와줘 감사하며 한번 더 도와달라」는 말을 하도록 인민반 별로 교육받았다. 가정집에서는 이들 방문시 강냉이밥 대신 풀죽이나 풀떡을 먹으라고 했다』
―(남씨에게)식량을 구하러 여행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은가.
『열차의 경우 객실과 지붕위는 물론 열차간 연결부위까지 식량구하는 사람들로 꽉 찬다. 속된 말로 거지떼가 몰려다니는 것 같다. 이들 중 80% 이상이 여행증명서나 차표가 없지만 단속할 엄두를 못낸다』
―(용씨에게)형(정현씨)의 귀순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텐데….
『처음엔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형이 미웠고 복수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혈육의 정이 무엇인가. 형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반가웠고 만났을 때는 펑펑 울기만 했다』
―(장씨에게)평양과 온성에서의 생활상 차이는….
『평양에서 중상류층으로 살다 온성에 가서 한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 지역의 격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늘 감시와 차별을 당해야 했다』
장씨는 이날 처음 본 구소련 출신의 며느리 갈리나씨(28)와 손자 재근(在根·3)군을 얼싸 안으며 『이번 추석은 우리 가족에게 최고의 추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