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의 시력을 앗아간 범인은? 시각 센서 아닌 정보 처리하는 뇌![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23일 23시 00분


뇌는 시각 정보 종합해 최종 해석… 시각 경로 손상되면 시력에 문제
뒤통수 부딪히면 순간 눈앞 깜깜… 뇌중풍-뇌종양도 시력 저하 유발
침침해진 눈 “노화 탓” 방치 못해… 뇌 건강이 향후 시력 관리의 열쇠

영화 ‘F1: 더 무비’에서 사고 이후 시력 이상을 겪는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사진 출처 IMDb
영화 ‘F1: 더 무비’에서 사고 이후 시력 이상을 겪는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사진 출처 IMDb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두부 외상 후 찾아온 시각 이상

영화 ‘F1: 더 무비’의 주인공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1990년대 포뮬러1(F1)에서 가장 주목받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경기 중 발생한 심각한 사고 이후 도박에 빠졌고, 개인 파산은 물론이고 가정 파탄까지 겪게 된다. 자신의 재능을 믿으며 꿈으로 가득 차 있던 그였지만, 단 한 번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게 됐다. 하지만 그는 타이틀이나 트로피를 얻지 못한 것보다 운전에 대한 열정을 잃어 버린 것이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니는 각지를 떠돌며 여러 경주에 참가하던 중 옛 동료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의 권유로 30년 만에 F1 무대로 복귀한다. 그는 연륜에서 비롯된 실력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그러나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또다시 큰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루벤은 소니가 과거 F1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건강상의 이유를 알게 된다. 소니는 첫 사고 당시 경추 골절, 척수 타박상, 흉추 압박 골절, 두부 외상으로 실명이나 마비, 생명의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 몸 상태로 경기를 계속한다면 경기 도중 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 루벤은 결국 그 자리에서 소니를 해고한다.

하지만 소니는 “운전대를 잡고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며 루벤을 설득한다. 결국 그는 마지막 경기에 출전해 우승을 거둔다. 그러나 사고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에 나선 탓에 경기 전은 물론이고 경기 중에도 시력 저하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을 겪는다.

오감 중 시각은 단연 가장 많은 정보를 처리한다. 그만큼 우리의 뇌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아주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시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눈, 즉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센서 자체의 이상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시각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뇌의 이상 때문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소니의 경우에도 눈을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두부 외상으로 인해 실명 가능성이 제기됐고, 실제로 시력에 문제가 생긴다.

눈의 망막이 받아들인 빛 신호는 시각신경을 거쳐 뇌의 환승역 역할을 하는 시상을 통과한 뒤 대뇌 후두엽의 일차시각겉질에 도달한다. 여기서 선의 방향이나 명암 같은 기본적인 시각 요소가 처음 해독된다. 이후 정보는 정밀한 분석을 위해 두 갈래로 나뉘어 이동한다. 하나는 사물의 형태와 색상을 파악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식별하는 복측 경로(측두엽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해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인지하는 배측 경로(두정엽 방향)다. 이 두 경로의 정보가 종합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눈앞의 세상을 입체적, 실시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이 경로상의 어디든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각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후두엽으로의 혈류 공급이 중단되는 뇌중풍(뇌졸중·뇌경색 및 뇌출혈)은 시야 결손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뇌중풍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뇌의 시각 정보 처리 경로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모든 뇌질환은 시각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뇌압을 높이거나 시각 경로를 압박하는 뇌종양, 시각신경의 마이엘린 파괴를 일으키는 다발성경화증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외상성 뇌손상, 뇌전증,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질환 역시 시각 정보의 전달 및 처리 네트워크를 손상시켜 영구적인 시각장애를 남길 수 있다.

이러한 심각한 질환이 아니더라도 뒤통수를 강하게 부딪히거나 뒤로 넘어졌을 때 순간적으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는 뒤통수 부분에 위치한 후두엽이 시각 정보를 일차적으로 처리하는 주요 영역이기 때문이다.

소니는 첫 사고를 겪은 뒤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자신이 그토록 촉망받던 분야에서 경주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그 결과 도박에 빠져 살게 됐다. 게다가 그가 입은 부상은 모두 신경계 손상과 관련된 것으로, 의학적으로는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큰 사고나 특별한 질병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는 이를 단순히 시력이 떨어진 문제로 생각해 안경을 새로 맞추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각의 문제는 뇌의 시각 정보 처리 기능 이상에서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뇌 기능 이상을 알아내고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각 정보 처리 기능에 생긴 문제로 인한 시력 저하 역시 뇌 건강 점검 및 관리, 치료를 통해 해결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이로써 노화로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 사고로 인한 시력 저하 위험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소니는 “가끔 차 안에서 모든 게 고요해지면서 심장이 천천히 뛰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세상은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보이고, 그때의 나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매번 그 순간을 찾아 달린다. (중략)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날고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이러한 희열을 뇌 건강 관리를 통해 모두가 느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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