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회복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2시간 벽’ 이렇게 빨리 깨질지 몰라… 내 한국 최고 기록 2시간7분20초
27년째 안 깨지는 이유는 선수 부족… 경쟁 사라져 기록 계속 뒷걸음질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운동해야… 마라톤재단 만들어 유망주 육성 꿈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경기 화성시 반월체육센터 트랙에서 팔짱을 끼고 카메라 앞에 섰다. 2020년 ‘근육긴장이상증’에 걸려 고생했지만 훌훌 털고 일어났다. 요즘 매일 뛰며 주말엔 전국의 마라톤대회에 초청받아 5∼10km를 달리고 있다. 화성=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4일 경기 화성시 반월체육센터에서 만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6)의 얼굴이 밝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2020년 초 ‘근육긴장이상증’ 발병으로 등이 굽었다는 소식에 국민을 걱정하게 했던 이봉주다. 국내 유명 병원을 다 찾아다녔고, 수술까지 받았지만 낫지 않던 병이었다. 2년 전 본보 인터뷰에서 “60% 정도 회복했다”고 했던 그는 “지금은 80%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매일 집(경기 화성시) 주변을 달리고 있다. 아직 길어야 10km를 달리지만 뛰는 것 자체로 즐겁다. 주말마다 전국 마라톤대회에 초청받아 5∼10km를 달리고 있다. 올 2월엔 일본 구마모토 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1시간45분에 완주했다. ‘풀코스는 언제 완주하느냐’고 하자 “아직 몸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조만간 풀코스도 완주할 기세다. 그에게 최근 근황과 마라톤계 이슈에 대해 물었다.》
―지난달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1시간59분30초를 기록해 ‘마의 2시간 벽’이 깨졌다. 이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솔직히 이렇게 빨리 깨질 줄 몰랐다.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사웨도 훌륭하다.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비공식 이벤트에서 2시간 벽을 깨긴 했지만, 공식 경기에서 이렇게 빨리 깨뜨릴 줄 정말 생각도 못 했다.”
그동안 42.195km 풀코스를 2시간 이내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킵초게는 201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수 설계된 코스와 차량 레이저 유도, 페이스메이커 41명이 투입된 비공식 이벤트 레이스에서 1시간59분40초를 기록했다. 세계육상연맹은 공인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마라톤화 한 짝이 97g으로 초경량에 탄성도 좋아 기술 도핑이란 얘기도 나왔다.
“장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결국 선수 실력이 뒷받침돼야 기록이 나올 수 있다. 사웨가 체계적인 훈련으로 2시간 벽을 깰 실력을 쌓았다는 게 더 중요한 포인트다.”
―마라톤에서 인간 한계가 어디까지라고 보는가.
“감을 못 잡겠다. 마라톤 선수를 한 나로서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2시간 벽도 이렇게 빨리 깨졌는데…. 한계를 설정하기가 두렵다.”
―그런데 세계기록과는 달리 본인이 선수 시절인 2000년 2월 도쿄 마라톤에서 세운 남자 한국 최고 기록 2시간7분20초는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마라톤에서 기록을 단축하려면 최소한의 훈련량이 있다. 그 최소한의 훈련량을 지금 선수들이 소화를 하지 못한다. 내가 훈련할 땐 대회 출전을 앞두고 몸을 푸는 가벼운 조깅을 포함해 매일 30∼40km를 달리는 훈련을 3개월 이상 하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 그 훈련량을 선수들에게 시키면 다 도망간다고 한다. 강훈련을 따라가지 못하는 체력도 문제지만, 하려고 하는 의지도 없다. 정신적으로도 준비가 덜 됐다.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지도자도 책임이 있지 않나.
“어차피 달리는 건 선수지, 코치와 감독이 뛰는 게 아니지 않으냐. 가장 중요한 게 선수다. 물론 지도자도 선수가 잘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체계적인 훈련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은 결국 선수 몫이다.”
이봉주는 선수 시절 풀코스를 40번 완주했다. 엘리트 기준으로 이 부문 세계기록이다. 이봉주 다음으로 완주를 많이 한 선수는 호주의 스티브 모네게티로 25회밖에 안 된다.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8년 방콕에 이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2연패를 했다.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보스턴마라톤을 포함해 국제 대회에서 모두 7번 우승했다. 언제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달렸다. 국민 마라토너로 불린 이유다.
―뒷걸음치는 한국 마라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결국 자원의 문제다. 달릴 선수가 없다. 우리 땐 초·중·고·대학까지 육상부가 있었다. 선수도 많았다. 지금은 팀이 거의 다 없어졌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게다가 지금은 학교에서 육상을 시키려는 부모도, 운동을 선택하는 학생도 없다. 저출생으로 아이 수 자체가 줄었고, 그나마 운동하려는 아이들은 인기 스포츠로 몰린다. 무엇보다 학교 체육이 죽었다. 그러니 마라톤뿐만 아니라 일부 인기 스포츠를 빼고는 선수가 부족하다. 선수가 많아야 경쟁이 되고, 그래야 기록이 단축된다.”
이봉주는 자신이 활동할 땐 경쟁자가 많았다고 했다. 이봉주의 친구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을 비롯해 선배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과 김완기 전 삼척시청 감독, 후배 김이용, 지영준 코오롱 감독이 있었다. 현역 시절 김재룡 감독은 2시간9분30초, 황 감독은 2시간8분9초, 김이용 2시간7분49초, 지영준 2시간8분30초, 김완기 전 감독은 2시간8분34초의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록이 비슷하다 보니 대회 때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이런 경쟁이 발판이 돼 황영조의 금메달 획득으로 이어졌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 감독이 2시간13분23초로 금메달, 김 전 감독이 2시간15분1초로 10위, 김 감독이 2시간18분32초로 28위를 기록했다.
한국 남자 마라톤은 2011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2회 동아마라톤에서 정진혁(당시 건국대)이 2시간9분28초로 2시간10분 이내 기록을 세운 뒤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23년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박민호(코오롱)가 2시간10분13초를 찍은 게 최근 가장 좋은 기록이다. 올 최고 기록은 3월 서울마라톤 겸 제96회 동아마라톤에서 역시 박민호(상무)가 세운 2시간11분5초다.
―침체한 한국 마라톤을 어떻게 살려야 하나.
“막막하다. 우리 땐 모든 학생이 달리고, 공 차는 등 운동하고 공부도 했다. 그러다 잘 달린다고 하면, 학교 대표가 돼 자연스럽게 육상 선수가 됐고, 공 잘 차면 축구 선수가 됐다. 요즘은 일부 운동선수를 빼면 다 공부만 한다.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도 하지만, 건강해야 공부도 잘하는 것 아닌가. 운동을 병행했을 때 공부도 더 잘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고가 나면 교사들이 책임져야 한다며 소풍과 수학여행도 없어졌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운동부 키우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나온다. 가까운 일본을 보라. 일본은 일찌감치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스포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오사코 스구루가 2시간4분55초의 일본 남자 마라톤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일본은 2시간4분대 2명, 2시간5분대 6명을 보유하는 등 아프리카 케냐와 에티오피아 군단을 빼고 가장 좋은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은 역전(에키덴) 마라톤 문화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역전 마라톤은 42.195km를 5∼7개 구간으로 나눠 달리는 대회다. 일본엔 중학교부터 실업팀까지 다양한 역전경주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게 하코네 역전경주다. 관동 지역 대학들이 참가하는 대회인데 TV 중계 시청률이 30%가 넘는 인기를 자랑한다. 이봉주는 “일본은 역전경주가 대중적 인기를 끌며 선수층이 두껍게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역전경주 하나만 남아 있다. 일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선수층이 넓어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요즘 한국 마라톤계는 엘리트와 달리 마스터스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 함께 달리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절이 올 줄 몰랐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스터스마라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반짝인기를 끌었지만 금방 식었다. 지금은 국민이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달리는 것 같다. 물론 달리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팔을 흔들고 다리를 교차해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동작이지만 긴 시간 땀을 흘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장거리를 달리면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낀다. 이런 마스터스마라톤 인구 증가가 엘리트 마라톤 부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요즘 다시 달리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일단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 있다고 자부했는데, 병에 걸려 좀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솔직히 지옥에 갔다 온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몸이 나쁠 때나 좋을 때나 국민께서 늘 응원해 주셔서 건강해질 수 있었다. 요즘 지방 대회에 나가서 달리면 내 모습을 보고 ‘정말 건강해져 보기 좋다’고 악수 청하고 박수 쳐주는 분들이 많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마스터스계에선 가끔 동호인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들었다. 엘리트 선수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나.
“아는 동호인들이 요청할 경우에 가끔 지도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 지도에 대해선 늘 생각은 하고 있었다. 몸이 안 좋아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건강도 거의 되찾았으니 천천히 준비하겠다. 다만 조건이 맞아야 한다. 오라는 데도 있어야 하고, 선수를 키울 수 있는 환경도 갖춰져야 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앞서 얘기했듯 조건이 맞는 팀이 있다면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하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마라톤 재단을 만들어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키우고 싶다. 불우한 선수들에게는 장학금도 주겠다.”
이봉주는 마라톤계의 대표적인 ‘의리남’으로 알려졌다. 1998년 팀 사정으로 후배들과 코오롱을 나왔을 때의 일화다. 여러 곳에서 팀 창단을 조건으로 오라고 했지만, 이봉주는 응하지 않았다. “나 혼자 살자고 후배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그 대신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했다. 결국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전초전으로 출전한 일본 도쿄 마라톤에서 한국 최고 기록을 세웠고, 이봉주는 그해 6월 후배들을 이끌고 삼성전자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 마라톤에서 그가 걸어갈 길이 주목 받는 이유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6)
△1970년 충남 천안 출생 △1993년 호놀룰루 국제마라톤 우승 △1995년 동아국제마라톤 우승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후쿠오카 국제마라톤 우승 △1998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한국 최고 기록(2시간7분44초) 수립,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0년 도쿄 국제마라톤에서 한국 최고 기록(2시간7분20초) 수립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7년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우승 △2009년 선수 은퇴, 체육인 최고 훈장 청룡장 수훈 △2022년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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