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카메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6〉

  • 동아일보


그것은 렌즈

눈 깜박임
그것은 나의 셔터

머리카락으로 둘러싸인
작디작은 암실도 있는

그러니까 난
카메라 따윈 매달고 다니지 않아요

알고 있나요? 내 안에
당신의 필름이 하나 가득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래에서 웃고 있는 당신
파도를 가르는 구릿빛 색깔의 눈부신 육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어린아이처럼 잠들고
난초 꽃처럼 향기를 발하고, 숲속에선 라이언이 되었던가?

세계에 단 하나 그 누구도 모르는
오직 나만의 필름 라이브러리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무거운 필름 카메라를 목에 매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값도 비싸서 사진을 찍을 일이 있을 때 옆집에서 카메라를 빌려 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꺼내 음식이나 고양이 사진을 찍어 몇 초 만에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리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세상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카메라가 자기 얼굴에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태어나 처음 본 세상을 눈으로 찰칵, 담아내 간직했던 일을 잊고 남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기기의 화면만 보게 되는 건 누구 탓일까. 자신이 직접 본 것, 혼자 느끼고 생각한 것의 특별함이 희미해지는 세상에서 이 시를 읽어 보길 권한다. 나의 눈은 세상에 하나뿐인 렌즈다. 내 안에는 필름 현상이 필요 없는 “작디작은 암실”도 있다. 차곡차곡 기억해 두었다가 어느 날 새로운 방식으로 꺼내 쓸 수 있는 추억이 발행되는 곳! “오직 나만의 필름 라이브러리”를 가진 사람이 우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 하나뿐인 렌즈를 가진 사람이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다락에서 발견한 오래된 사진 한 장처럼, 찬찬히 이 시를 음미해 보자.

#눈#이바라기 노리코#시인#셔터#사진#추억#필름#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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