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의미하는 스타는 배우가 되려는 모든 이의 꿈입니다. 그러나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빛이 있는가 하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은 광도를 남기는 별도 있습니다. 한국 영화사에서 안성기(향년 74세·사진)는 후자에 속한 이름입니다. 그는 스타였고, 동시에 한 시대의 얼굴이자 한국 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안성기의 연기 인생은 한국 영화의 현대사와 포개집니다. 그는 다섯 살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스크린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1968년까지 70여 편에 출연할 만큼 19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아역 배우로 화려하게 통과했지만, 이후 학업과 군 복무, 진로에 대한 고민 속에서 10여 년간 영화계를 떠나 있었습니다. 이 공백은 훗날 ‘아역 스타는 성인 배우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비켜 가게 한 역설적인 시간도 됐습니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안성기의 진정한 재등장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는 배창호, 임권택, 이장호 등 당대 한국 영화의 거장들과 호흡을 맞추며 19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고래사냥’의 순수한 청년, ‘깊고 푸른 밤’의 쓸쓸한 남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도시 빈민, ‘남부군’의 빨치산까지 그의 얼굴은 늘 시대의 고민을 대신 말하고 있습니다.
안성기는 흔히 ‘물 같은 배우’로 불렸습니다. 어떤 그릇에 담겨도 그 모양을 따르되, 본질은 변하지 않는 연기였습니다. 그래서 코미디와 사회극, 블록버스터와 예술 영화를 자유롭게 오갈 때조차 관객은 그를 신뢰했습니다. ‘투캅스’의 비리 형사,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냉혹한 보스, ‘실미도’의 지휘관, ‘라디오 스타’의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그의 출연작은 한국 장르 영화의 역사 지도처럼 보입니다.
스크린 밖에서도 안성기는 드문 존재였습니다. 스캔들이 없었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고, 병마 속에서도 영화 행사와 후배들을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대중은 그를 숭배의 대상이라기보다, 오래 신뢰해 온 친구 같은 스타로 기억합니다.
이달 5일 안성기는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다음 작품이 최고’라고 말하며 스크린 위에서 늘 현재형이었던 배우 안성기는, 그렇게 한국 영화사의 가장 오래 빛나는 별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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