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도구의 발전으로 2020년까지 전 세계 기업 간 거래(B2B) 영업사원 1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 예측이 빗나갔음을 보여준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비소매 분야 B2B 영업사원 수는 2015년 390만 명에서 2019년 410만 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팬데믹 기간인 2020년 잠시 390만 명으로 감소했으나, 이후 반등해 2024년에는 420만 명에 이르렀다. 물론 온라인 쇼핑 등 디지털 전환으로 일부 영역의 영업 인력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상당수 B2B 거래에서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이 급속히 발전하는 지금은 어떨까. 더 똑똑해진 기술이 결국 영업사원을 대체하게 될까. 답은 여전히 ‘아니요’다. 반복적 구매가 중심인 제약이나 유통업계에서는 영업 인력이 줄고 있지만, 복잡성이 높은 기술 및 첨단 제조 분야에서는 오히려 영업 조직의 규모가 확대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로 고객관계관리(CRM) 선도 기업 세일즈포스는 AI 제품군을 강화하기 위해 영업 인력 채용을 늘렸다. 마크 베니오프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말 발표한 영업 인력 1000명 증원 계획 목표를 한 달 만에 2000명으로 높였다. 엔지니어링 등 다른 직군의 채용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나온 전략적 결단이었다.
엔비디아, 구글 클라우드, 아마존웹서비스(AWS) 등도 최근 5년간 기업 고객 대응 전선을 넓히기 위해 영업 인력을 공격적으로 확충해 왔다. 한때 “투자자가 강요하거나 내가 버스에 치이지 않는 이상 영업팀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하던 팔란티어의 앨릭스 카프 CEO조차 2019년부터 영업 인력을 충원하기 시작해 현재 170명 이상의 조직을 갖췄으며, 앞으로 그 규모를 늘려갈 계획이다.
그렇다면 기술 기업들은 왜 영업 인력을 오히려 늘리고 있을까. 고객의 구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호성’을 해소하는 데 영업사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매 과정에서 생겨난 단순한 문제는 디지털 도구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이 처한 상황과 문제가 복잡해질수록, 제품 탐색은 물론이고 실제 환경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영업사원의 전문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구매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고객은 온라인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적합한 제품을 1차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제품이 과연 자신의 요구를 정말로 충족할 수 있을지 검증하기 위해선 영업 담당자의 통찰이 필요하다. 기업 역시 잠재 고객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개별 고객에게 맞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영업 인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해관계자가 많거나 맞춤형 솔루션이 필요한 복잡한 거래일수록 영업 담당자의 안내가 필수적이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고객 맞춤형 제안서를 설계하고, 실제 판매를 성사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 영업사원이 고객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구매 이후 단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업 환경 변화에 따라 제품과 솔루션 역시 조정이 필요하다. 자동화된 지원 시스템은 단순 요구를 처리하는 데 그치지만, 복잡한 문제에서는 영업 인력이 고객의 사업적 맥락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객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것 역시 영업 담당자의 핵심 역할이다.
따라서 영업 리더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한가’가 아니다. 우리의 고객이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는가이다. 고객과 기업이 마주한 모호성을 파악하고 인간의 개입이 필수적인 영역과 디지털이 주도할 영역을 구분해 영업사원의 역할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제 영업사원의 역할은 판매를 독려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고객 문제의 복잡성과 상황에 맞춰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고객의 니즈가 변할 때는 깊이 관여하고, 경험이 쌓여 익숙해진 업무에 대해선 개입을 줄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동시에 영업사원 스스로가 디지털 도구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신기술을 수용해 데이터 기반으로 고객에게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영업사원의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혁신의 파도 속에서도 영업사원은 기술로 대체되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역할이 재정의됐을 뿐이다. 시장 변화와 규제, 지정학적 혼란이 야기하는 불확실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복잡성과 리스크 속에서 똑똑하고 적응력 강한 영업사원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디지털 아티클 ‘AI 시대, 영업사원은 죽지 않는다’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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