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호]정치 양극화와 ‘캔디맨’의 저주

  • 동아일보

韓 정치 실패 원인 두고 양극화 탓하지만
자신이 양극화를 떠받치는 1인 아닌지
분노하고 상대방 탓만 하면 당신이 캔디맨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채 1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우리는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 파면했고 두 번씩이나 뒤이은 궐위선거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는 새 정부 출범을 경험했다.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교체해야 할 정도의 정치적 위기들, 특히 작년의 계엄 선포가 야기한 헌정질서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정치공동체가 존속하고 있는 것조차 기적 같고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 불행의 기원으로 누구나 ‘정치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되뇐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서 그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나타나 살인을 일삼는 1992년 공포영화 속 ‘캔디맨’의 악령처럼, 우리는 생각만큼 정치 양극화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때로는 그 말이 양극화된 정치를 정당화하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피해가 더욱 악화되고 확산되는 캔디맨처럼 말이다.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모든 종류의 정치적 문제를 이 용어 하나로 환원해 버리는 경향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 타협과 합의의 부재가 정치 양극화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행정부의 독주가, 포퓰리즘에 대한 호소가, 혹은 사법질서에 대한 공격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 퇴조의 공통적 현상이며, 정치 양극화가 야기한 문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양당제적 대립은 항상 있어 왔고, 때로는 시민들의 선택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던 때도 있었다. 결국 문제는 정치 양극화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물론 정치 양극화라는 말이 양당 대립이 상당 기간 지배해 온 한국 정치 지형에서 양측 간 갈등이 악화된 상황을 지칭하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정치 양극화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합의가 없다. 그것이 정치인이나 정당 엘리트 간 대립을 말하는 것인지, 양당을 지지하는 대중의 정치적 고집을 뜻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이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 매우 중요한데,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국민 의사’를 따를 뿐이라 말할 것이고 반대로 정치 엘리트들의 무분별한 선동이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서구 학계에서는 대체로 엘리트 주도의 대중 동원이 정치 양극화의 실체라는 연구 결과들이 우세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로마 콜로세움에서 상대방이 흘리는 피에 열광하며 ‘처형’을 외치는 관객들과 콜로세움을 세우고 관객을 모은 황제 중 누가 더 큰 책임이 있는지를 가리는 일은 애초에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적인 포인트는 정당 엘리트와 대중을 구분하는 일이며, 누가 시작했든 그 소환된 악령을 돌려보낼 큰 책임은 정당 리더십에 있다.

문제는 누구나 정치 양극화의 문제를 부르짖고 그 폐해에 치를 떠는 듯 보이지만, 누구도 이를 넘어설 유인이 없다는 점이다. 정당 지도부가 당내 다른 목소리를 단속하고 기율을 강화하며, 정치인들이 ‘콘크리트 지지층’을 더 공고히 다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갈등의 악화와 정치 양극화의 지속이 아니겠는가. 제3당의 출현을 막고, 못해도 2등은 보장된 것이 바로 우리 선거법과 정치 양극화의 비밀이 아니었던가. 현재 정치 구조에서 기득권을 선점한 이들이 이런 구조를 앞장서 바꿀 유인은 없다.

거울을 보면서 이름을 불러 캔디맨의 악령을 소환하고 싶은 것처럼, 금기와 파국에 대한 매혹도 있다. 언론과 뉴미디어, 특히 유튜브의 수익 구조를 생각하면 이런 대결과 갈등, 그리고 죽음 같은 파국이 엄청난 수익모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최근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이들에게는 소환된 악령을 돌려보낼 아무런 유인이 없다. 그리고 이들은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다. “이것을 대중이 저토록 절실하게 원하지 않느냐”고.

영화 캔디맨의 결정적인 반전은, 사실 그 악령이 거울에 비친 나의 추악한 면이라는 점이다. 그 악령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직시하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당신은 혹시 도덕적 올바름을 확인하기 위해, 승리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 혹은 무뎌진 분노를 다시금 벼리기 위해, 마치 게임을 하듯 넋을 잃고 뉴스와 유튜브를 하염없이 보고 있지 않았는가. 어느 날 당신이 용기를 내어 그 거울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주변의 이웃들이 누구인지 새삼 돌아볼 수 있다면 이 정치적 저주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정치 양극화#대통령 탄핵#궐위선거#헌정질서 위기#정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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