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펼쳐진 ‘밀실’[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49〉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5일 23시 09분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에드바르트 베르거 ‘콘클라베’


갑작스러운 교황의 선종으로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린다. 콘클라베란 라틴어로 ‘콘클라비스(Conclavis)’, 즉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이란 뜻이다. 그 의미처럼 이 선거는 외부로부터 단절된 채 누군가 과반의 표를 얻어야 끝나는 끝장 투표로 이뤄진다. 영화 ‘콘클라베’는 바로 이 교황 선거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져와 전 세계의 정치 현실을 은유한다. 교황 선거라면 어딘가 성스러운 선택들만 이어질 거라 생각하지만 전 세계 추기경들의 투표는 세속적인 파벌정치를 그대로 재연한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가 나뉘고 인종과 언어, 지역으로도 파벌이 형성된다. 교황이라는 종교적 지도자를 뽑는 선거지만 다른 생각과 성향들은 어둠 속 밀실정치에 의한 표 대결을 그려낸다.

중심에 서서 혼탁해져 가는 선거를 개탄스럽게 바라보며 파벌로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끝없이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는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은 그 어두운 길에 작은 빛줄기 같은 힘을 발휘한다. 그는 말한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이며,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마다 파벌이라는 밀실에 숨어들어 확신에 갇혀버린 이들이 타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는다. 마침 종교분쟁이 야기한 테러로 성당의 창이 부서지고, 꽉 막혀 있는 공간에 구멍이 뚫려 바깥의 새소리가 들려오는 장면은 그래서 밀실에 갇힌 자들에게 던지는 신비한 경고처럼 그려진다.

확증편향으로 치닫는 포용 없는 정치 대결이 펼쳐지는 우리의 현실도 이와 같지 않을까. ‘밀실’ ‘파벌’과 같은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의 밀실은 저 넓은 광장에서도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에드바르트 베르거#콘클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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