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도, 중국도 아닌 캐나다에서 반미(反美) 바람을 타고 국산품을 쓰자는 ‘바이 캐나디안(Buy Canadian)’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고, 연일 ‘51번째 주가 돼라’며 주권을 깡그리 무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말했듯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부터 한반도 산맥까지 주요 전장에서 (미국과) 생사를 함께한 동맹’이었던 캐나다로선 이런 배신이 없다.
▷‘캐나다인에 의한, 캐나다인을 위한 현명한 소비를 하자.’ 캐나다산 제품 목록을 정리한 웹사이트 ‘메이드 인 캐나다(Made in Canada)’는 이렇게 주장해 호응을 얻고 있다. 마트에는 캐나다산 식료품을 모아둔 매대가 등장했다. 온타리오, 브리티시컬럼비아는 아예 주 정부가 나서 미국산 주류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코카콜라 같은 미국 상품 불매 운동으로도 번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화롭게 살던 캐나다인들이 미국의 괴롭힘을 더는 못 참겠다며 분노하고 있다”고 2일 전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국토가 넓고, 그 땅에는 엄청난 자원이 매장돼 있다. 하지만 캐나다 경제는 미국에 종속된 채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산 자동차의 부품은 만들지만 캐나다산 자동차는 없다. 원유 생산량의 98%는 미국으로 수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무한 에너지를 갖고 있고, 스스로 자동차를 만들고, 사용할 양보다 많은 목재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캐나다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모욕했다. 캐나다로선 경악할 막말이지만 그만큼 미국 의존도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바이 캐나디안’으로 관세 충격을 상쇄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캐나다는 미국의 후방 생산기지로 충분히 먹고살 만했기 때문에 제조업 기반이 허약해졌다. 캐나다산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식료품, 화장품, 가구는 국산을 쓸 수 있지만 냉장고와 식기세척기는 살 수 없다. 트뤼도 총리는 “주류는 켄터키 버번 대신 캐나다 라이를 사고, 플로리다 오렌지 주스는 먹지 말자”고 했다. 애국심만으로 맛없고 비싼 술과 주스를 계속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115년간 자치령이었던 캐나다가 헌법 개정 권한을 영국으로부터 가져와 완전히 독립한 것은 1982년이다. 그 후에는 강대국인 미국 옆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택해 왔다. 다양한 이민자가 모여 사는 ‘모자이크 국가’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캐나다라는 국가 정체성이 느슨했던 이유다. 그런데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전쟁이 캐나다인의 애국주의를 깨웠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호형호제’하던 이웃 국가마저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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