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와 함께 내려오는 노래[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9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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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화 ‘눈 내리던 겨울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다. 눈이 내릴 때마다 찾아 듣는 각자의 겨울 노래가 있을 것이다. 미스터투의 ‘하얀 겨울’이나 터보의 ‘회상’이 대표적이고, 최근에는 자이언티와 이문세가 함께 부른 ‘눈’도 고전의 대열에 합류해 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겨울이 되면 찾아 듣는 노래들이 몇 있다. 김현철이 부른 ‘눈이 오는 날이면’이나 조동진의 ‘진눈깨비’ 같은 노래들은 대중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노래를 듣고 있으면 겨울의 이미지에 더 푹 빠지게 한다.

김현식의 ‘눈 내리던 겨울밤’도 빼놓을 수 없다. 학창 시절 처음 들은 이 노래는 듣는 순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김현식의 포효와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는 극적인 곡의 구조와 함께 겨울밤의 분위기를 더 깊게 해주었다. 처음 들은 이후부터 ‘눈 내리던 겨울밤’은 나만의 겨울 노래 목록에 자리했다.

‘눈 내리던 겨울밤’의 ‘오리지날’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건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김현식이 직접 만들고 부르기까지 한 노래의 원곡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눈 내리던 겨울밤’을 처음 부른 가수의 이름은 이화, 대중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가수보다는 당시 CF, 즉 광고 음악에서 더 빛을 발했다. 또 많은 가수의 앨범에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수 이화보단, 음악계의 뒤에서 더 많은 역할을 했던 보컬리스트였다.

이화의 이름은 뒤늦게 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1981년 이화는 첫 앨범을 발표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앨범의 타이틀곡은 5년 뒤 김현식이 다시 부르는 ‘눈 내리던 겨울밤’이었다. 앨범에는 ‘눈 내리던 겨울밤’뿐 아니라 이장희·이승희 형제가 만들어 준 곡, 그리고 재즈와 영화음악으로 일가를 이룬 정성조의 곡과 연주가 담겨 있었다. 질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앨범이란 뜻이다. 이 곡들을 더욱 빛나게 해준 건 단연 이화의 목소리였다. 이화는 마치 프렌치 팝이나 챔버 팝을 부르듯 당시 한국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꿈결 같은’ 목소리를 들려줬다. 위의 대단한 음악인들이 그의 앨범에 참여하고 곡을 제공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앨범은 실패했고 이화는 이후 몇 장의 앨범을 더 발표했지만 잊힌 가수가 됐다. 이화의 이름이 다시 회자된 건 최근의 바이닐 열풍과 옛 가요를 향한 젊은 세대의 재평가 움직임 덕분이었다. 쉽게 구할 수 없어 가요 애호가들에게 전설처럼 이야기되던 이화의 앨범은 얼마 전 CD와 바이닐로 재발매됐다. ‘전설 같다’는 건 부풀려지기 마련이지만, 수월하게 구할 수 있게 된 이화의 음악은 이제 다시 온전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얻었다. 김현식의 노래와는 또 다른 청아한 ‘눈 내리던 겨울밤’을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폭설이 내린 어제, 오랫동안 봉인돼 온 이화의 ‘눈 내리던 겨울밤’을 들었다. 30여 년 전의 겨울 노래를 2024년 새해에 듣는다. ‘눈’과 ‘겨울’과 ‘밤’을 담은 감성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이화#눈 내리던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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