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새샘]‘독이 든 성배’ 들었다는 원희룡 장관이 남긴 과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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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지난해 5월 취임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정 직후 장관 자리를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빌려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국토부 장관직이 ‘잘하면 대박, 못하면 쪽박’인 자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원 장관은 어느 쪽일까.

취임 초 원 장관은 민감한 이슈를 과감히 공략하며 이름값을 올렸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부동산 규제 완화부터 시작해 택시 요금, 화물연대 파업, 건설노조 불법행위 등 과거 국토부 장관이 크게 언급하지 않던 사안까지 나서서 강한 발언을 쏟아낸 덕분이었다. 고금리가 지속되며 치솟았던 집값도 마침 내림세를 보였다. 이쯤이면 원 장관은 ‘대박’ 쪽에 가깝게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원 장관을 바라보는 국민들과 원 장관 지시로 일을 해 온 국토부 공무원들은 과연 그를 ‘대박’으로 평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원 장관이 벌려 놓은 일 중 제대로 끝을 낸 사안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부동산 규제 완화. 분양 주택 실거주 의무 완화는 당장 전월세 물량 수급에 직접 영향이 있는 사안인데 여전히 법 통과가 안 됐다. 통과가 늦어진 것을 야당 탓으로만 돌리기엔 ‘정치인 출신 장관’인 그에게 1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지만 기존 정부안보다 후퇴해 재건축 단지들은 계산기를 다시 두들겨야 한다.

택시 요금은 어떤가. 요금은 껑충 뛰었는데 택시도, ‘모빌리티 혁신’도 찾아보기 힘들다. 화물연대 파업. 화물차 운송시장의 불합리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했지만 기존의 안전운임제를 대체할 요금제는 확정되지 않은 채 공전만 하고 있다. 건설노조 불법행위. 민사소송으로 노조에 손해배상을 받아내겠다던 큰 목소리는 쑥 들어가고, 건설사들은 장관 때문에 인건비만 올랐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이렇다 보니 부처가 새로 내놓는 정책도 힘이 빠진다. 대표적인 것이 공시가격 제도다. 지난해 분명히 현실화 계획을 수정해 올해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수정하겠다는 계획을 수정해 또 1년을 더 연구한다고 한다. 연구용역에 이중으로 들어갈 혈세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내후년 세금이 어떻게 매겨질지 내년 하반기까지 ‘깜깜이’로 남게 된 국민들만 속이 터진다.

인허가, 착공 물량이 급감하며 3, 4년 뒤 주택 수급이 불안하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지만 주택 공급 대책도 미적지근하긴 마찬가지다. 10여 년은 걸릴 경기 지역 신도시 택지가 그나마 손에 잡히는 대책이다. 서울 도심에 짓겠다고 발표했던 물량은 발표 3년이 지나도록 대부분 사전 청약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전 정부에서 발표한 땅이라도 실행은 이 정부의 몫인데, ‘협의 중’으로 묶여만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국토부 안팎에선 원 장관의 후임 장관으로 누가 오든 상당히 골치가 아플 거라는 예상이 벌써부터 나온다. 원 장관이 추진한 사안 모두 민생과 밀접한 주요 이슈인데, 나름 ‘힘 있는 장관’이었던 그가 목소리만 높였지 완결을 못 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1년 반만에 모든 과제를 마무리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독이 든 성배’를 과감하게 받아들던 취임 당시 모습을 원 장관이 다시 한번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너무 과한 기대일까.


이새샘 산업2부 차장 iamsam@donga.com
#책임지지 않는 장관#일을 못 끝내는 부처#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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