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가진 신통한 힘[내가 만난 名문장/강성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6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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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이 부드럽게 불어올 때 그 어조는 부드러워야 한다. 하지만 파도가 해안을 채찍질하듯 몰아칠 때는 거칠고 투박하며 포효하듯 읽어야 한다.”

―존 콜라핀토의 ‘보이스’ 중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건국대 겸임교수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건국대 겸임교수
서양에서 가장 좋은 글은 귀와 언어중추를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문장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원래 목소리 연기자(배우)였으며 그의 작품은 애초에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게 목적이었다. 우리가 문자언어의 결정체라고 하는 셰익스피어 희곡들도 따지고 보면 말로 하는 공연을 위해 쓴 셈이다. 1300년대 초반까지도 읽기는 ‘소리 내서 읽기’를 의미했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혀를 놀리고 입술을 움직여야 제대로 된 읽기였던 것. 읽기가 오늘날처럼 텍스트 이해력(Reading Comprehension)인 세상은 상상불가였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인성구기(因聲求氣). 소리에 기인하여 기운을 구하다. 곧 ‘소리를 타야 기운이 찾아진다’란 뜻. 무엇이든 성독(聲讀), 즉 소리 내서 읽어야 좋은,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중고생 시절, 어학 과목은 무조건 외우라는 선생님들의 주문은 다분히 억압적이고 수긍하기 힘들었을 터. 그러나 중국의 문호 요내(姚鼐·1731∼1815)는 소리가 의미에 선행하며 소리를 고르게 내어 반복적으로 책을 읽으면 그 뜻이 어느새 자기 안에 맺힌다는 이론을 오래전 설파했다.

신속·편의·재미만을 좇는 터치와 클릭의 시대. 글과 문자만으로 소통하고 말과 소리가 소거된 세상이다. 말하기가 자꾸 싫어지는 것은 그 내용의 적절성, 스킬의 부실함을 걱정하는 이유도 있겠으나, 입·혀·턱 주변 근육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낯설고 귀찮은 탓도 크리라. 어떤 텍스트든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처음엔 작게 내다가 점점 소리를 키워본다. 내처 분명한 정확성과 깨끗한 명료성을 입힌다.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리듬이 생겨나고 자꾸 읽다 보면 그다음엔 말하고 싶어진다. 저절로 표현력이 강화된다. 소리의 신통한 힘이요 기운이다.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건국대 겸임교수



#존 콜라핀토#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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