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전망의 책상이 있는 ‘원정 서재’[2030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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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얼마 전 ‘공유 별장’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을 만났다. “그런데 ‘공유’라는 개념과 ‘별장’이라는 개념이 공존할 수 있나요?” 별장이라는 건 모름지기 숙박업소와 달리 내 취향, 내 흔적을 더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냐는 취지였다. 사진을 보자 더 이상의 증명은 불필요했다. 애초부터 취향이 아닐 수 없는, 형편 이상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다. 물론 그 ‘N분의 1’조차 비싸다는 게 함정이지만.

비슷한 취지로 실천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 이름하여 ‘원정 서재’.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 아닌 데스크 서핑(desk surfing)이랄까. 나를 설레게 하는 장소를 떠올리면 대체로 책상이 있다. 언젠가는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책 냄새와 나무 냄새가 어우러진 멋진 서재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기에 여유 시간이 주어지면 여지없이 책상을 찾아 나선다.

시작은 두 해 전, 첫 출간 원고 작업을 하던 때였다. 한 주 정도 혼자 시간을 갖기로 하고 숙소를 찾았다. 기준은 하나, 바다 뷰 책상과 편안한 의자.

바다 뷰 통창 앞에 침대가 아닌 책상이 있는 곳을 찾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객(客)을 위한 공간은 대개 책상의 중요도가 낮다. 티 테이블 정도는 종종 있었는데 낮고 좁았고, 의자들은 예쁘지만 딱딱했다. 끈질긴 검색 끝에 바다 뷰 책상과 푹신한 의자가 있고 바로 앞에 해변이, 바로 옆에 물회 맛집이 있는 곳을 찾았다. 주인이 안식년을 보냈던 곳이라 했다. ‘역시 그런 것이었습니다. 머물다 간다면 바다 앞에 침대를 두겠지만, 살다 간다면 책상을 두겠지요.’ 당시의 기록.

그 첫 ‘원정 서재’는 속초였다. 뭐든 처음이 그렇듯 특히 더 애틋하게 남았는데, 방에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가 한몫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리밍으로 테이프를 고른다. mp3 스피커로 들으면 훨씬 더 깨끗한 음질로 듣고 싶은 노래만 골라 들을 수 있는데 왜인지 그렇게 된다. 러닝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가 맛있는 걸 먹고, 낮잠을 자다가 또 맛있는 걸 먹고, 자기 전엔 영화를 한 편 본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항상 바다가 있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정 서재’라는 이름 아래 바다 뷰 책상을 수집한다. 남몰래 틈틈이 바다 앞 오피스텔들의 시세를 점검하긴 하지만, ‘원정’이라는 매번 낯선 장소성이 주는 특별함도 아직은 좋다. 또 지도 위에 포진한 ‘원정 서재’들을 보면, 문득 떠나고 싶은 어느 날 이 중 하나 정도는 비어 있겠지, 마치 내 것인 양 마음이 든든하다. 내 흔적도, 소유권도 없지만 스스로 부여한 ‘공유 별장’ 멤버십인 셈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갖고 싶다.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책 냄새와 나무 냄새가 어우러진 멋들어진 서재. 한쪽에는 작은 바를 만들어야지. 영화 볼 큰 스크린도 있으면 좋겠다. 근처에 물회 맛집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뭐가 됐든, 멀리 떨어진 서재가 필요한 누군가들에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물론 아직 준비된 건 이름뿐이지만… ‘원정 서재’ Coming Soon!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공유별장#스타트업#원정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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