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상민]데이트폭력 대응, 더 피해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9일 2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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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상습화되면 살인 가능성까지
가해자 접근 금지 등 법적 근거 조속히 필요
경찰, 긴급성 판단해 직접 나설 수도 있어야

박상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박상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그러나 현재 수사기관 신고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대응은 피해자의 동의하에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정도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과 달리 접근 금지 조치 등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최근 피해자의 데이트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가해자가 1시간 만에 범한 보복 살인사건은 더 이상 데이트폭력에 대한 대처가 늦어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일으킨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특성이 있다. 이로 인해 이어질 수 있는 살인 등의 강력범죄 또한 우발적인 행위가 아닌 상습적이고 연속적인 폭력의 연장선에서 일어난다. 그렇기에 데이트폭력에 대해 예방과 추가 피해 및 재범의 방지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데이트폭력 개념에 대한 규범적 논의에서 벗어나 피해자 보호 중심 논의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결혼 및 출산율 감소, 비혼 동거 커플의 증가, 1인 가구의 증가 등 전통적인 가정구조로부터의 변화가 있다. 이렇게 혼인 외적인 방식으로 친밀 관계를 맺는 경우가 늘어남에도 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적 기반은 미흡한 실정이다. 앞서 언급한 사건의 피해자 역시 스토킹으로 규정할 만한 반복적인 위협이 없었고, 1년 동안 동거를 했지만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현행법에 따른 적극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가정구성원’에는 법률혼이나 사실혼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이 해당되어, 혼인 의사 없는 동거 또는 비동거 관계에 있는 경우를 포함하지 못한다. 지속적인 동거 관계에 있었을 경우 가정폭력처벌법상의 사실혼에 해당하는 것으로 폭넓은 해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형법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형사사건이 아닌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 범죄를 오히려 축소하고 경미한 사건으로 취급하게 된다는 모순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친밀 관계 기반 폭력이라는 측면에서 데이트폭력의 속성과 특징은 가정폭력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에 접근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임시 조치와 피해자 보호 명령 제도 등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데이트폭력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제정할 경우 그 내용이 상당 부분 중복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들의 내용도 가정폭력처벌법의 규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데이트폭력을 가정폭력의 개념 안에 통합하여 규율하며, 일본의 경우도 법률혼·사실혼 외에 ‘생활의 본거지를 같이하는 교제 관계’까지 배우자폭력방지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데이트폭력의 일부를 가정폭력으로 수용하여 규율하고 있다. 이에 현행의 가정폭력처벌법이 지닌 문제점들(피해자 의사 존중 규정에 의해 심각한 폭력 사건도 가벼운 제재로 처리하거나,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등)이 개선되는 것을 전제로 데이트폭력을 가정폭력처벌법의 규율 대상으로 포섭시키는 방안이 현실에서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데이트폭력에 접근 금지, 피해자 보호 명령 등이 적용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과 더불어, 피해자 보호라는 목적을 실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명령의 이행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일단, 데이트폭력 신고 단계 등에서 경찰은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재발 우려와 긴급성 등을 판단하여 요건이 충족하는 사건에서는 피해자 설득의 과정 없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는 관행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접근 금지 명령에 대한 이행을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 명령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고, 이 점이 피해자를 취약하게 한다. 이에 명령 위반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미국 등의 경우를 예로 하여 접근 금지명령 대상자 또는 위반자에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부착하는 조치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경찰과 법원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신고를 포기하는 피해자도 다수이고, 수사기관 등에 대한 도움 요청이 오히려 피해자를 더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우려 또한 있다. 우리는 가해자를 자극하지 않는 방안을 피해자에게 권유할 것인지, 아니면 가해자를 철저히 제재하면서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스마트워치 보급으로만 피해자의 안전을 약속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제재하는 방식으로 피해자 보호 정책의 방향을 선회할 필요가 있다.


박상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데이트폭력#안전이별#가해자 접근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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