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율… 코리아 디스카운트 부른다[수요논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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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C 상속세’ 과다 논란

《넥슨그룹의 지배구조는 NXC-넥슨재팬-넥슨코리아로 연결돼 있다. 비상장 지주회사인 NXC가 넥슨재팬 지분 47.15%를, 넥슨재팬이 비상장기업인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보유하는 형태다. 정점에 있는 NXC는 고 김정주 회장(62.92%)과 부인 유정현 이사(34%)가 사실상 100%를 소유하고 있었다. 김 회장의 NXC 주식을 물려받은 가족들은 최근 상속세로 NXC 지분 29.3%를 물납했다. 평가가치 4조7000억 원의 주식을 세금으로 거둔 정부는 단번에 넥슨그룹의 2대 주주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유족이 현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 요건인 3분의 2 지분을 넘는 나머지를 모두 낸 것”이라고 했다.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넥슨의 상속세액은 6조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고액의 상속세로부터 기업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을 택한 것이다.》









● 대기업도 감당 어려운 상속세율

앞서 삼성그룹 상속인들에게는 2020년 이건희 회장 사후 약 12조 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5년 동안 6회에 걸쳐 2조 원씩 나눠 내기로 했다. 2011∼2020년 10년간 한국의 연간 평균 상속세수 2조2500억 원에 육박하는 액수를 삼성그룹 상속인들이 내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 등 상속인들은 계열사 지분 매각, 보유주식 담보대출, 배당으로 상속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구광모 ㈜LG 대표를 비롯한 LG그룹 상속인들도 900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나눠 내고 있다. 재벌이라도 한 번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인 것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상속증여세 부담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다. 과세 표준이 30억 원을 넘을 경우 세율은 50%, 기업 경영권까지 물려받으면 10%포인트가 할증돼 60%로 높아진다.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로 내는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낮다. 일본은 비상장 기업의 경우 세액 80%의 납부를 유예했다가 5년 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면제해줘 실효세율은 11% 정도다. 프랑스와 영국의 가업 상속 실효세율도 각각 11.25%, 20%에 그친다. 미국에선 자녀가 부모로부터 2340만 달러(약 306억 원)까지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상속세 부담은 줄어드는 추세다. 상속세를 걷는 것보다 가업을 계속하도록 해 법인세를 더 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게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슬로바키아(2004년), 스웨덴(2005년), 체코(2014년) 등이 2000년 이후 상속세를 폐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5개국에는 상속세가 없다. 스위스 등 5개국은 상속세가 있지만 자식에게 물려줄 때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다.

한때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던 스웨덴이 상속세를 없앤 데에는 제약회사 ‘아스트라’ 상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4년 아스트라 지분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결국 주식 대부분을 팔아도 상속세를 마련할 수 없었다. 이 회사는 나중에 영국의 제네카에 인수돼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가 됐다.

상속세율이 높은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콘돔업체 유니더스, 밀폐용기업체 락앤락, 종자업체 농우바이오, 손톱깎이업체 쓰리세븐 등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경영권을 매각한 사례로 꼽힌다. 하나같이 해당 분야에서 국내외 1위를 달리던 업체들이었다.

● 부의 재분배 효과는?

상속증여세는 부(富)를 바라보는 한 사회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광복 직후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90%였던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사회적 혼란을 틈타 형성된 재산을 정상으로 볼 수 없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을 것이란 판단이 반영됐던 것이다. 지금도 상속세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측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근로소득, 사업소득과 달리 ‘공짜로 얻은 재산’에 세금을 물려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에 대한 문제가 최근 제기되는 것은 이런 효과에 비해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2020년 한국의 상속세수는 3조9000억 원으로 전체 국세의 1.4%로 비중이 크지 않았다. 삼성그룹 등 일시적인 세수 증가분을 빼고 보면 1% 안팎,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도 0.5%에 그친다. 부의 재분배,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반면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는 증가하고 있다. 상속을 통해 오너 일가 지분이 줄어든 기업을 겨냥해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의 공격이 이뤄지면 기업은 배당을 늘려 이들을 달래게 된다. 상속인들이 세금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늘리는 일도 벌어진다. 기업 경쟁력 강화에 들어가야 할 돈이 경영권 방어, 세금 낼 돈으로 쓰이는 셈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속세 마련을 위한 과도한 배당은 기업에 부담이 되고, 주식 매각을 택하면 경영권 승계 및 방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가족 명의 자회사를 세워 일감을 몰아주는 편법승계 문제 역시 끊이지 않는다.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에 비해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상속세제가 꼽히기도 한다.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오너들이 주가 높이기에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낮은 주가를 선호한다는 지적이다.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보통 지정학적 리스크를 많이 얘기하지만, 중국 위협을 받는 대만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2.4배인데, 한국은 1.0배 수준”이라며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데에는 상속세제 문제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 까다로운 가업승계 공제제도

과도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의 수명이 끊어지는 걸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가업승계 공제제도다. 정부는 가업승계의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가업을 물려받은 후 가업을 영위하는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상속공제 및 증여세 과세 특례 대상도 연간 매출 5000억 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 확대했다. 세금을 덜 걷더라도 기업의 영속성을 높이는 게 이 제도의 목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속인이 지켜야 할 사후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들의 불만이 많은 건 업종 유지 조건이다. 욕실 자재를 제조하는 A사는 원래 플라스틱 자재를 주력으로 삼았으나 세라믹 양변기를 신사업 분야로 키우고 있는데, 업종 변경으로 판정받을까 봐 성장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A사의 S 대표는 “공제제도가 외려 발목을 잡으니 열심히 사업을 키울 의지가 꺾인다”고 말했다. 우리와 비슷한 공제제도를 운용하는 독일과 일본은 업종 변경에 대한 제한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6∼2021년 공제제도 이용 건수가 연평균 95건, 총 공제금액이 3000억 원으로 저조한 반면 독일의 경우 연평균 1만 건, 23조8000억 원에 이른다.

● 상속세제 어떻게 바꿀 것인가

기업의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 짧은 한국에서 ‘100년 기업’을 늘리고 키워내기 위해서는 2000년 이후 과세표준, 세율을 23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속세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을 제외한 G7 국가들처럼 상속세율을 소득세율보다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세제 전문가인 김낙회 전 관세청장은 “지나치게 높은 세율은 조세 회피를 유발하는 만큼 50% 이상의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은 과하다”며 “소득세율과 같거나 낮게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상속세가 있는 OECD 회원국의 평균 최고 상속세율(27%)과 비슷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상속세를 폐지한 선진국들처럼 기업 오너 일가의 지분을 다른 재산과 구분해 사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자본’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업 대주주 지분을 물려받았을 때 세금을 물리지 않고, 이 지분을 처분해 이득을 챙길 때 ‘양도소득세’처럼 세금을 물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호주 캐나다 스웨덴 등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들은 이 같은 자본이득세 방식을 도입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넥슨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과도한 상속세율은 시장경제의 효과적 작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물려받은 자본을 활용해 실제로 돈을 벌었을 때 세금을 물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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