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변명 통하지 않게 영리한 넛지로 착한 소비를[광화문에서/최한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6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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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출구가 두 곳인 마트에서 실험을 했다. 양쪽 출구에 모금함을 설치했다. 한쪽에는 자원봉사자가 그 앞을 지키게 했고 다른 쪽에는 자원봉사자가 서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원봉사자가 없는 쪽으로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양쪽 모두를 자원봉사자가 지키고 서 있게 했다. 어느 쪽으로 나가도 자원봉사자가 서 있는 모금함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피할 방법이 사라지자 모금함에 돈을 넣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행동경제학에서는 ‘그럴듯한 부인(plausible deniability)’이라고 한다. 평소 기부할 의사를 가진 사람이라도 변명거리가 있으면 일단 피하는 쪽을 택한다. 자원봉사자가 없는 문으로 나간 사람들은 ‘급하게 나오느라 저쪽에 모금함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그럴듯한 변명을 할 수 있다. 양쪽에 모두 모금함을 두고 ‘지켜보는 눈’을 설치하면 변명의 여지가 사라진다.

이 실험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지는데 자원봉사자가 한쪽에만 서 있다가 양쪽에 서는 것으로 설계를 바꾸는 순간, 출구를 향해 오던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생각하며 자원봉사자가 없는 쪽으로 나가려던 찰나, 빠져나갈 구멍이 막히자 순간적으로 멈춰버린 셈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나가는 구석의 작은 문을 찾아 허둥지둥 그쪽으로 나가기도 했다고 하니 사회적인 시선이 우리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많은 소비자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착한 제품을 구매할 용의가 있다고 답하지만 실제 소비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착한 소비를 위해 비용을 더 내야 하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500원 할인받겠다고 텀블러를 챙겨나가는 소비자가 많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럴듯한 부인 또는 변명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기업은 영리하게 착한 소비를 기획해야 하고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다양한 넛지를 고민해야 한다.

앞의 실험이 유용한 팁을 제시한다. 사회적인 시선을 활용하는 것이다. 사람은 나를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에 민감하며 남과 비슷하게 행동하려는 본능을 가진다. 다른 사람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면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지속가능성 추구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65% 높아졌다는 실험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착한 소비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도 좋지만 외적인 보상보다는 내적 동기가 발동할 때 효과가 더 강하다. 공개적으로 약속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스위스 납세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체납을 줄이겠다고 약속하도록 하자 납부율이 올라갔다. 금전적 보상과 연결하자 효과가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제품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많은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제품은 품질이 떨어지거나 예쁘지 않거나 비싸다고 생각한다. 착한 소비도 얼마든지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입증해야 장기적인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han@donga.com
#그럴듯한부인#행동경제학#경제#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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