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주는 작은 힘[공간의 재발견/정성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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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무엇이 문제인지 계속해서 이사를 다니고 있다. 아파트와 한옥에서 두 번씩 살았고 그 사이에 엄마 집에서도 2년을 기숙하듯 살았다. 지금 집은 세 번째 한옥으로,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작은 단독주택에 살았다. 이사의 번거로움이야 말할 것도 없는데 아내가 짐 정리하는 루틴을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이번에는 이 집이 어떻게 바뀔까’ 설레기도 한다.

이삿짐센터 분들이 짐을 부리고 가면 아내는 이곳저곳을 뒤져 평소 아끼고 좋아했던 작은 물건을 찾는다. 나 같으면 이사 전에 미리 빼놓을 텐데 또 절대 그러지는 않는다. 그렇게 어렵게, 때로는 간신히 물건을 찾은 다음에는 물티슈와 거즈로 그것을 깨끗이 닦은 후 주방 한쪽에 조심히 올려놓는다. ‘이쁘다’ 하고 혼잣말도 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정리를 시작한다. 이번에 뽑힌 아이는 반달 모양의 주황색 유리와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의 남자가 조각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그림을 표지로 쓴 책 ‘할머니의 저녁 식사’였다(이 책 역시 작다).

부부는 계속 닮아가 이제 나도 새로운 공간이 생기면 아끼는 작은 물건을 찾아 정성껏 올려놓고 정리를 시작한다. 최근에는 화장실에 좋아하는 작가의 작은 그림을 걸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품으로 농도를 아주 연하게 해 그린 자연 풍경이다. 화장실에 작은 숲이 들어온 것처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 자리에 다른 작품이 걸리는 건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된다. 그렇게 작은 것들과 소소한 교감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아무리 이쁜 것이라도 개수가 네 개를 넘어가면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다는 것. 하나도 괜찮고 둘도 나쁘지 않고 셋도 보기 좋은데 네 개가 넘어가는 순간 번잡스러워진다. 그 옛날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 딱 세 개로 끝난 이유가 있다.

작은 것들은 볼수록 사랑스럽다. 존재감이 작지도 않다. 크고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반짝’ 하고 눈에 들어온다. 어렵게 공들여 고른 것일수록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도 새록새록 오래간다. 물건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그 영혼은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작은 것이 큰 힘을 준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작은 것은 작은 기쁨을 준다. 만족과 행복의 순간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작은 힘은 무척 중요하다. 나이 40이 넘어가면 한 번씩 이유도 없이 눈에 눈물이 맺힌다. 내 능력 밖의 큰 것을 좇으며 무던히 애를 쓸 때 특히 그렇다. 내 영혼이 나를 안쓰럽게 보는 것일까. 작은 것이 건네는 매일의 다정한 인사가 없다면 나의 삶은 돌연 팍팍해질 것 같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작은 것#작은 물건#작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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