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가서 마주한 사진 속 아버지는 우물 같았다. 나를 비추고 그와 나 사이의 시간을 투영하는. 환한 얼굴로 제주도에서 말을 타고 계신 모습, 한복을 입고 엄마와 안방 자개장 앞에 앉은 모습, 유독 귀여워하셨던 둘째 손자 원준이와 카메라를 향해 웃고 계신 모습…. 친근하기도, 낯설기도 했다. 아버지가 하신 말 중 아픈 기억으로 남은 것이 하나 있다. ‘막둥이는 지 엄마만 좋아하지.’ 어느 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고.
아버지는 그 옛날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극히 가부장적이었다. 여름이면 상하의 모두 모시로 지은 옷을 맞춤복처럼 입고 다니셨는데 제때 풀칠과 다림질이 안 돼 있으면 엄마에게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때는 그런 모습만 크게 보였다. 자식 사랑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끔찍했던 아버지는 지금의 봉안당도 본인이 직접 결정해 알려주셨다. 선산이 있는 곳에 본인을 묻으면 자식들 찾아오기 힘들고 오가는 길에 싸움만 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장례식 때 필요하다며 영정 사진으로 쓸 초상화까지 미리 준비하신 분이다.
형, 엄마와 함께 갔을 때 아버지 앞에서 머무는 시간은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해가 거듭될수록 더 짧아졌다. 어쩌면 형식에 그친 순간들. 혼자 가서 물끄러미 아버지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저 오래 머무르게 됐다. 뒤늦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아버지 역시 사랑했는데 말을 못했다. 어떤 공간은 혼자 들어갈 때 더 깊이 열린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