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처럼 웃어보기를[관계의 재발견/고수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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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10여 년 전 출근길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마주친 아랫집 아이가 나를 엄마로 착각해 “엄마!”라고 불렀다. 다섯 살쯤 되었을까. 어린 떡갈나무만 한 작고 둥그런 아이가 앙글앙글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태어나 누굴 미워한 적일랑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은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내가 엄마가 아닌 걸 알고서도 아이는 나에게 함빡 웃어주었다.

아이 앞에 멈춰선 나는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무섭고 두려운 것 말고도, 너무 아름다운 걸 마주쳤을 때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서둘러 출근하던 젊은 나. 그때 나는 뭐가 그리 바빠서 초조했는지, 뭐가 그리 부루퉁해서 찌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문득 미간과 어금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닫고 휘파람 같은 숨을 내쉬었다. “안녕.” 어색하지만 애써 웃어보이자 아이가 더 활짝 웃어주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출근길, 늘 같았던 풍경이 한소끔 달라졌다. 가만히 둘러보니 가을이었다. 볕에 잘 마른 부드러운 천 같은 바람이 뒷머리를 쓸어주었다. 환한 웃음을 마주했을 뿐이었는데 처음 느끼는 뭉클함이 스몄다. 아까의 순간을 허밍하듯 곱씹어 보았다. 코끝 찡해지는 이런 느낌이야말로 가을이라고 잘 기억해 둬야지. 나는 소리 내 ‘가을’ 하고 말해 보았다.

어느새 누가 ‘엄마!’ 부르면 무심코 돌아보는 아이 엄마가 되었다. 어린 떡갈나무만 한 여섯 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아침 동네를 걸어 다닌다. 일찍이 곳곳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상가를 여는 상인들, 골목을 쓸다가 담벼락에 앉아 볕을 쬐는 노인들 앞에서 우리는 자주 멈춰 선다. 때때로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르며 앙글앙글 웃고, 어른들도 세상에 예쁜 걸 보듯이 함빡 웃어준다. 누군가를 길러보았기 때문일까. 오래 살아보았기 때문일까. 바닥을 내려다보는 마음을 가졌기에 키 작은 아이들을 마주 보는 어른들은 너그러운 웃음이 닮았다. 잘 웃는 사람들 곁에서 나는 날마다 웃는 마음을 배운다.

하늘도 낙엽도 바라볼 새 없이 가쁘게 살더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웃어주면 좋겠다. 웃음이 영 어색하다면 이렇게 따라 해보면 된다. 소리 내 ‘마음’을 말해보기를. 웃음 머금은 얼굴이 된다. 소리 내 ‘가을’을 말해보기를. 웃음 짓는 얼굴이 된다. ‘마음’과 ‘가을’을 말해보며 웃어준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마주 웃어줄 것이다. 마음, 허밍 같은 무언가 내 안으로 스민다. 가을, 바람 같은 무언가 바깥으로 퍼진다. 가을바람 코끝에 스치면 안팎으로 따뜻해질 준비를 하자고. 날마다 추워질 테지만 우리는 너그러워지자고. 마주 웃는 얼굴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가을#풍경#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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