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속 식품 라벨의 역사 추적
‘건강’ ‘과학’ 등 성분 홍보 문구… 구매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점
가공식품도 건강식품으로 현혹… 소비 자극하는 광고판으로 변모
◇이것은 왜 오렌지주스인가/자크 프롤리히 지음·김병순 옮김/552쪽·3만3000원·따비
게티이미지뱅크
오늘날 소비자는 식품을 고를 때 포장지를 먼저 읽는다. 원재료명과 영양성분표, ‘저당’ ‘고단백’ ‘무첨가’ 문구는 구매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미국 오번대 기술사 부교수가 쓴 신간은 이 익숙한 식품 라벨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식품 라벨’이란 매체의 전기(傳記)다.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통해 식품 라벨이란 기술적 결과물이 탄생하고, 그것이 다시 우리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30년대 식품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돼 미 전역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식품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의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전에 없이 벌어졌다. 얼굴을 보며 거래하던 시대가 끝나자,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신뢰를 새롭게 구축할 기술적 장치들이 필요해졌다. 식품 라벨은 그중 하나였다.
책은 시대별 사례를 따라가며 식품 라벨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그중 하나가 1950∼1960년대 미 사회를 휩쓴 ‘건강 열풍’이다. 1955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미국에선 심장병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영양학 연구가 활발해지고 식습관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됐다. 1960년 미국심장협회 보고서는 마가린과 저지방 식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이는 곧바로 마케팅의 핵심 언어가 됐다. 마가린과 저지방 식품의 매출은 급상승했다.
오랫동안 소비자들은 쇼트닝, 마가린, 가공 치즈 같은 식품을 값싼 대체 가공식품으로 여겼다. 그러나 건강 담론이 확산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제 이들 식품은 자연식품보다 더 건강하고 과학적인 선택지로 재해석됐고, 소비자들도 적극 구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을 두고 의학계 내부에선 아직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광고주들은 이를 ‘최신 과학’, ‘의사들이 주목하는 연구’란 언어로 포장해 적극 홍보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 또한 이 새로운 식습관 관련 선전 문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다.
1950∼1960년대 심장병 공포와 영양학 연구의 확산은 식품 라벨의 역할 자체도 바꿔 놓았다. 이전까지 원재료와 성분을 표시하는 기술적 장치에 가까웠던 식품 라벨은 점차 ‘건강’과 ‘과학’을 전달하는 매개로 변모했다. 기업들은 식품 라벨에 단순한 정보를 적는 데 그치지 않고 ‘심장 건강’, ‘저지방’ 같은 가치를 덧입혔다. FDA 역시 이 같은 건강 관련 문구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식품 라벨의 역설이었다. 식품 기업들은 무거운 의무로만 여겨질 수 있는 식품 라벨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다. 건조한 숫자와 성분표를 표시하는 수준을 넘어 ‘저지방’, ‘저당’처럼 가치판단이 담긴 형용사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식품 라벨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보 장치이면서, 동시에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판이 됐다. 오늘날 초가공식품들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미지를 내세우는 역설적 풍경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책이 식품 규제사와 정책 변화를 촘촘히 따라가는 만큼,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학술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식품 산업의 뒷이야기나 먹거리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의외일 수도 있다. 그 대신 우리가 매일 읽고 지나치는 식품 라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먹는 것’ 뒤편의 제도와 사회적 협상의 역사를 알고 싶은 독자라면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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