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中, 韓영화-드라마 불법 유통 전문 플랫폼까지 등장했다[글로벌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중국 베이징에 사는 교민 박모 씨가 최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구입한 ‘반스(VANS)’ 짝퉁 제품(오른쪽 위아래
 사진). 정품(왼쪽 사진)은 ‘VANS’라고 표기돼 있지만 짝퉁은 ‘VNSV’로 교묘하게 바꿔 놨다. 그러나 짝퉁 판매자는 
타오바오에 정품 사진을 올려놓고 홍보했다. 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중국 베이징에 사는 교민 박모 씨가 최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구입한 ‘반스(VANS)’ 짝퉁 제품(오른쪽 위아래 사진). 정품(왼쪽 사진)은 ‘VANS’라고 표기돼 있지만 짝퉁은 ‘VNSV’로 교묘하게 바꿔 놨다. 그러나 짝퉁 판매자는 타오바오에 정품 사진을 올려놓고 홍보했다. 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에서 2년째 살고 있는 한국 교민 박모 씨(45)는 최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미국 제화 브랜드 ‘반스(VANS)’의 제품을 샀다. 한국보다 약 30% 싼 가격을 보고 한국보다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생산된 덕이라고 여겨 얼른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는 신발을 받아든 후에야 가짜 제품, 소위 ‘짝퉁’을 샀음을 알았다. 그가 산 제품은 반스의 영문 브랜드명을 교묘하게 바꾼 ‘VNSV’였다. 박 씨는 “제품 사진과 설명을 꼼꼼히 읽어봤고 모두 진품과 똑같았다. 가품(假品)일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며 허탈해했다.》





고도성장기 당시 중국은 세계적인 ‘짝퉁 천국’으로 꼽혔다. 미국 등 서방이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를 강하게 항의하고 중국이 미국과 주요 2개국(G2)을 이루는 패권국으로 부상하면서 다소 잦아드나 싶었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에는 몇몇 패션 명품 브랜드의 가품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의 가품 또한 넘쳐나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0만 원에 골프 의류 완전 구비
타오바오에서 판매하는 유명 골프 브랜드 짝퉁 제품들. 약 35만 원 하는 정품 셔츠는 128위안(약 2만5000원), 10만 
원가량인 정품 모자는 48위안(약 9000원), 50만 원 상당 정품 벨트는 150위안(약 2만9000원)에 각각 거래 중이다. 
타오바오 홈페이지 캡처
타오바오에서 판매하는 유명 골프 브랜드 짝퉁 제품들. 약 35만 원 하는 정품 셔츠는 128위안(약 2만5000원), 10만 원가량인 정품 모자는 48위안(약 9000원), 50만 원 상당 정품 벨트는 150위안(약 2만9000원)에 각각 거래 중이다. 타오바오 홈페이지 캡처
최근 한국에서 골프가 큰 인기를 끌면서 중국에서도 골프 관련 가품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대부분 중국에서 싸게 만든 가품을 한국에 몰래 들여보내 큰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중 일부가 중국 현지에서도 유통되고 있다.

타오바오 등 중국의 어지간한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는 타이틀리스트, 핑 등 유명 골프 브랜드의 골프채와 캐디백 모조품을 살 수 있다. 한국에서라면 골프채와 캐디백을 모두 새로 산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 200만 원 이상을 줘야 하지만 중국산 가품은 3000∼5000위안(약 60만∼100만 원)으로도 충분하다.

골프웨어 브랜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 유명 골프 브랜드 PXG는 물론이고 어뉴, 말본, 파리게이츠 등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브랜드의 옷, 모자, 벨트 등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타오바오에서 PXG 가품으로 골프 의류 전체를 마련한다고 가정해 보자. 긴팔 셔츠 128위안(약 2만5000원), 바지 188위안(약 3만7000원), 모자 48위안(약 9000원), 벨트 150위안(약 2만9000원)이면 충분하다. 총 514위안(약 10만1000원)에 이른바 ‘전체 깔 맞춤’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PXG 단품 의류가 보통 40만∼50만 원에 판매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싼 가격이다.

겨울철에는 중국 곳곳에서 ‘몽클레르’ ‘캐나다구스’ ‘노스페이스’ 등 유명 겨울옷 브랜드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역시 대부분 가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 진품을 사는 사람은 바보’란 말까지 나온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가품은 대부분 제조업 중심지인 남부 광둥성에서 만들어진다. 이후 타오바오, 가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몰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가품업자들은 최근에는 아예 위챗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구매자를 모집한다. 진품과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소위 ‘특A급’부터 한눈에 봐도 가품이 분명한 B, C급까지 가격에 따라 다양한 가품을 판매한다. 쇼핑 사이트를 거치지 않으니 이들의 거래 행위를 막을 방법도 애초에 없는 셈이다.
한국 짝퉁 대부분도 中 생산
이런 현실은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여오려다 적발된 지식재산권 위반 물품 규모가 약 2조 원에 달한다. 품목별로는 시계가 607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가방(6060억 원), 의류직물(2140억 원), 신발(782억 원), 운동구류(394억 원), 가전제품(333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생산지별로는 중국산이 83.3%로 압도적이었다. 한국 내에서 유통되는 가품의 대부분이 중국산인 셈이다.

중국 당국과 유명 쇼핑 사이트가 이런 현실을 마냥 도외시하지는 않고 있다. 알리바바는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위조품 적발 조치를 강화했다. 알리바바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최소 100만 개의 상표와 500여 개의 유명 진품 브랜드가 저장돼 있다. 이를 통해 AI가 진품과 가품 로고를 가려낸다. 알리바바가 발견한 위조품 사진 샘플은 총 137억 장에 이른다. 이는 중국 국가도서관이 소장한 도서의 186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중국 사법당국 또한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앞서 7월 한국 대법원 격인 최고인민법원은 영국의 유명 구두 브랜드 ‘마놀로 블라닉’이 중국인 사업가 팡위저우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마놀로 블라닉의 손을 들어줬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인기 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에 등장해 유명해진 이 구두의 상표권을 두고 양측은 2000년부터 무려 22년간 법정 다툼을 벌여 왔다.

중국은 가장 먼저 상표권을 출원한 사람에게 상표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중국 기업 및 중국인이 외국 브랜드의 중국 내 상표권을 먼저 등록하는 사례가 잦았다. 이런 식으로 먼저 확보한 상표권을 진짜 주인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거액을 요구했고 해외 유명 기업과 브랜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들어줘야 하는 구조다. 그간 마놀로 블라닉의 중국 내 상표권 또한 팡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로 인한 비판이 계속되자 2년 전 당국은 최초의 상표권 출원 당시 출원자의 악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무효화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최고인민법원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마놀로 블라닉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콘텐츠 분야로 확대되는 中 짝퉁
당국의 노력에도 최근 중국의 위조품 산업은 제조업을 넘어 정보기술(IT), 게임, 문화콘텐츠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산 콘텐츠를 불법으로 복제해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소위 ‘짝퉁 플랫폼’이 대거 등장했다.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등은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에 따른 중국의 보복으로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불법 플랫폼들이 이를 무단 공유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방영된 지 하루만 지나도 중국어 자막이 달린 채로 손쉽게 시청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 역시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상사설망(VPN) 등 다양한 우회 수단을 통해 넷플릭스 콘텐츠를 대부분 볼 수 있다.

당국은 지난달 28일 국가발전개혁위원회 회의를 열고 ‘신시대 브랜드 건설 추진에 관한 지도 의견’을 채택했다. 자체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짝퉁 천국’ 오명을 벗고 지식재산권 강국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선언을 넘어 실질적 성과를 거두려면 제조, 서비스, 콘텐츠 산업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지식재산권 침해부터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나라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서 중국의 지식재산권만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불법 유통#짝퉁#콘텐츠 분야 확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