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의 거짓말 [글로벌 이슈/하정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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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 직전 나라 중심가에서 집권 자민당의 지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그는 8년 
8개월간 재임한 최장수 총리였지만 측근이 운영하는 두 사학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 정부 돈이 쓰이는 벚꽃 관람 행사를 지역구 관리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내내 거짓 해명으로만 일관했다. 이로 인해 2020년 9월 중도 사퇴했고 결국 비극을 맞았다. 
나라=AP 뉴시스
8일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 직전 나라 중심가에서 집권 자민당의 지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그는 8년 8개월간 재임한 최장수 총리였지만 측근이 운영하는 두 사학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 정부 돈이 쓰이는 벚꽃 관람 행사를 지역구 관리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내내 거짓 해명으로만 일관했다. 이로 인해 2020년 9월 중도 사퇴했고 결국 비극을 맞았다. 나라=AP 뉴시스
8일 유명을 달리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원래 3연임만 가능한 집권 자민당 당규를 고쳐 전무후무한 4연임 총리가 되려 했다. ‘아베 1강’으로 불릴 만큼 경쟁자도 없었다. 그러나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 승리 14개월 만인 2020년 9월 중도 사퇴했다. 그 시발점이 바로 모리토모(森友) 학원 비리다.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다 추가 의혹이 속속 터지자 버티지 못했다.

2017년 2월 아사히신문은 모리토모가 초등학교를 짓기 위해 오사카 인근 도요나카의 역세권 국유지를 감정가보다 85% 싼 1억3400만 엔(약 13억 원)에 사들였다고 폭로했다. 헐값에 금싸라기 땅을 차지했는데 당국이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한때 이 학교 명예 교장이었다. 당시 이사장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또한 아베와 내각 인사 대부분이 가입한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핵심 인물이다.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칙어를 외우게 하고 혐한, 혐중 정서를 부추기는 극우 교육도 내내 논란이었다.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아베 전 총리는 보도 직후 의회에서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나나 아내가 연관이 있다면 총리와 의원을 다 그만두겠다”고 했다. 공개석상에서의 직설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일본 관행으로 보면 상당히 센 발언이었다. 천문학적 돈이 오간 것도 아니고 인명 피해도 없으니 ‘잘 모른다’ 정도로 답할 법한데 총리직 사퇴를 거론해 더 큰 의혹을 샀다.

한 달 후 그의 골프 친구 가케 고타로(加計孝太郞)가 이사장인 가케 학원이 총리 덕에 52년 만에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은 의사의 무분별한 증가를 막기 위해 의·치·수의학부의 신설을 제한한다. 아키에 여사는 이 학원 어린이집의 명예 원장도 맡았다. 논란이 고조됐지만 모조리 부인했다.

다음 해 의회에 제출된 재무성과 모리토모 간 토지거래 문서가 계약 원본과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순 특혜가 아닌 공문서 위조 및 증거인멸이란 대형 비리로 번졌고 이에 관여한 재무성 말단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관련자 전원이 불기소됐다. 가케 비리 역시 당초 해명과 달리 아베와 이사장이 수차례 수의학부 신설을 논의했음이 드러났다. 사태 초기 의혹을 폭로한 전 문부과학성 차관은 사찰을 당했다.

2019년에는 매년 4월 세금으로 도쿄에서 열리는 정부 주최 벚꽃 관람 행사에 그의 지역구 야마구치 주민이 대거 초청됐으며 아키에 여사가 참가자 선정에 관여했음이 밝혀졌다. 주무부서 내각부는 야당이 자료를 요청한 날 모든 문서를 파쇄했다. 정부 행사를 지역구 관리 목적으로 쓴 것도 모자라 증거까지 없애자 민심이 돌아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국민이 “총리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집권 중 아베를 ‘내각 2인자’ 관방장관으로 발탁한 정치적 스승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까지 “거짓말을 그만하고 사퇴하라”고 나무랐다. 이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발발하자 한때 70%를 넘던 내각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4연임은커녕 원래 임기도 지킬 수 없었다.

그의 사망 전날 사퇴 의사를 밝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또한 방역 수칙 위반, 측근의 성비위 감싸기 등에서 거짓말을 거듭했음이 드러나 사실상 쫓겨난 처지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이 각각 탄핵 위기를 맞거나 하야했을 때 미 국민이 가장 분노한 지점은 불륜과 도청이 아니라 위증 및 위증 교사였다. 어떤 이를 계속 속이거나 모든 이를 잠시 속일 순 있어도 모든 이를 계속 속일 순 없는 것이다.

세 차례의 연이은 의혹 때 아베 전 총리가 단 한 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와 솔직한 해명을 했다면 어땠을까. 변변한 반대파가 없고 퇴임 후에도 사실상 상왕 노릇을 한 점을 감안하면 권좌를 지켰을 가능성이 높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폭력에 스러진 그의 명복을 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아베 신조#최고 권력자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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