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과 ‘경찰 독립’의 민망함[광화문에서/조종엽]

입력 2022-06-27 03:00업데이트 2022-06-27 12:48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조종엽 사회부 차장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최근 초유의 ‘치안감 7명 인사 번복 발표’ 논란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즘 줄임말로 ‘할많하않’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본보 기자가 진상조사 계획을 묻자 “사건 관련 경찰청 인사는 인사담당관뿐인데, 이미 사실관계 파악을 마쳤다. 더 조사할 게 없다”고 했다. ‘우리 쪽 잘못이 아니다’라는 은근한 항의가 행간에서 느껴진다. 경찰청이 “앞으론 인사를 대통령 결재 후 발표하겠다”라고 밝힌 것도 사실 ‘지금까진 결재 전 발표해 왔고, 문제가 없었다’라는 항변에 가까워 보인다.

해명대로라면 경찰은 21일 오후 6시경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인사안(편의상 ‘초안’이라고 지칭)이 ‘관행’대로 행안부와 대통령실이 재가한 안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행안부 측은 최종안이 아닌 초안을 경찰에 보낸 건 절차를 밟기 위해 기안을 마련하라는 취지였고, 대통령실과 조율해 실제 인사발령 내용을 반영하라고 했는데 경찰이 조율 없이 공개했다는 입장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대통령실 결재도 안 된 상태에서 기안 단계(의 인사안)를 (경찰) 인사담당자가 확인하지 않고 내부 공지해버려 문제가 됐다”라고 못 박았다.

엄밀히 말하면 정정된 인사발표(21일 오후 9시 34분) 역시 대통령 결재(21일 오후 10시) 전 발표됐다. 문제의 핵심은 형식적으로 대통령 결재 전이냐 후냐가 아닌 셈이다. 왜 행안부가 경찰에 처음부터 최종안을 보내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사태의 진상은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확실한 건 최근 행안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권고안을 두고 일던 논란이 묻히고, 단숨에 경찰의 ‘국기 문란’ 사태로 국면이 전환됐다는 것이다.

세간에는 경찰 통제 권고안뿐 아니라 이번 인사 번복 발표 논란에서도 권한이 커진 경찰의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정권의 의도가 비친다는 시각이 많다. 선출된 권력의 경찰 통제가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권력의 경찰 통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고문과 사찰, 선거 개입 등 경찰의 ‘흑(黑)역사’를 겪고 난 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87년 체제’의 합의였다고 본다.

그러나 김창룡 청장이 최근 ‘행안부 경찰국 신설’ 등 논란에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김 청장은 지난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비위 문제 등을 밝히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기 때문이다.

김 청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할 경찰위원회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고, 경찰이 국민보다 정권에 충성하는 모습은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됐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 중에서 경찰청이 1991년 내무부 산하에서 외청으로 독립한 이후 취지에 걸맞은 발자취를 남겼다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독립성과 중립성을 주장하지만 근거로 내세울 만한 ‘30여 년 독립의 성과’가 마땅치 않은 경찰의 모습이 민망해 보인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