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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임금피크제는 임시수단… 호봉제→직무급제 개편이 근본 해법”[인사이드&인사이트]

이상희 한국공학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입력 2022-06-20 03:00업데이트 2022-06-20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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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후 쟁점 부상한 ‘임피’
이상희 한국공학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최근 대법원이 노사가 고령 근로자 임금을 하향 조정하기로 합의한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보는 판결을 내놨다. 노사가 합의했음에도 해당 임금피크제 내용이 고령자고용법 제4조가 정한 ‘연령차별 금지’의 강행규정을 위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산업 현장에선 동요가 일어날 수 있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근로자나 기업으로서는 회사의 임금피크제가 유효한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상급 노동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피크제 무효론’을 발전시키고 싶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 2003년 등장한 임금피크제, 고령화로 가속


당초 우리나라 최초의 임금피크제는 중·고령층 조기퇴직 때문에 도입됐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유행하던 ‘사오정’(45세 정년)이나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 표현처럼 중·고령층 근로자들의 조기퇴직 문제가 불거졌다.

너무 이른 나이에는 은퇴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에 높은 호봉임금 수준으로 인해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2003년 신용보증기금에서 최초로 정년을 유지하기 위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후 대기업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조기퇴직의 대안인 임금피크제가 눈에 띄게 도입됐다.

그 후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 추세를 맞았다.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이 국가적 이슈가 됐다.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은 고용 연장 또는 정년 연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령 근로자의 고용 연장은 높을 대로 높아진 연공 또는 호봉임금이 계속 유지되는 문제를 초래한다. 연공 또는 호봉임금은 고령자의 고용을 안정시킬 수 있는 60세 정년 의무화에 큰 걸림돌이 됐다.

이 때문에 현행법은 정년을 연장하되 ‘정점’에 있는 호봉임금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2013년에 만들어져 2016년부터 시행된 고령자고용법 제19조는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의무화했다. 같은 법 제19조의2 제1항에서는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의 노사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산업계는 정년 연장은 임금피크제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는 임금피크제와 정년 연장을 연계시키지 말라고 했다. 고민 끝에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했지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년 연장 시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 그쳤다.

○ 한국 일본만 도입한 임금피크제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앞선 시기에 급속한 고령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임금체계 구조는 직무가치와 성과가 반영되는 방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임금피크제와 같은 방식의 임금 조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실제 임금피크제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에서만 발견되는 임금 조정 방식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임금피크제는 일본의 고령자 고용 문제 대응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임금체계 역시 우리와 같은 연공임금 체계가 지배적이다. 이것이 일본사회의 고령화 추세와 맞물리면서 임금 상승의 정점 시기부터 임금 조정을 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임금피크’ 대신 ‘임금 조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임금 조정을 통해 55세에서 60세로 정년 연장을 유도했다. 1999년부터는 60세 정년을 의무화하고, 65세 정년은 노력 의무로 하는 입법을 했다. 일본은 긴 시간 동안 임금 조정을 먼저 유도하고 60세 정년을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우리와 같은 임금체계 개편 관련 규정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고령사회 때문에 등장했지만 결국 뿌리 깊은 호봉임금 체계 때문에 확대된 것이다. 호봉임금제가 없었다면 임금피크제가 아예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호봉임금제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으로 도입됐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무직 노동단체도 호봉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국내 전체 호봉임금제 도입 비중은 미세하게 줄거나 유지되지만 대기업 부문은 소폭 증가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대기업과 호봉임금이 없는 중소기업과의 임금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 정년연장형 임금피크 유효성은 인정될 듯

그간 주로 공기업의 임금피크제 유효성과 관련한 소송들이 있었다. 법원은 대부분 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을 불문하고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자체를 인정해왔다. 법원도 호봉임금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년연장형이라도 임금 조정을 정년 연장 시점보다 훨씬 이른 44세부터 삭감한 한 민간기업의 임금피크제에 대해선 무효라 판단한 바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 역시 정년유지형이지만 임금피크 대상자의 실적이 더 높고 임금 삭감의 불이익이 큰 상태에서 임금피크제에 따른 보상 조치가 없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 사례들은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에 대법원이 제시한 도입 목적의 정당성 등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은 향후 보다 엄격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정년유지형에 대해서는 면밀한 판단을 기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령자고용법상 임금체계 개편 등은 정년 연장은 물론이고 호봉임금과도 교환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 노사는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를 차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섣부른 소송이 남발되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호봉임금이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고령자 고용 연장을 위해 임금피크라는 ‘임시 수단’을 택한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호봉임금 체계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새 정부는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개편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임금체계 개편을 노사 자율에 맡기고 성과를 기대하기는 너무 요원하다. 임금의 결정은 노사 자율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호봉임금을 노사 자율로 개편하도록 무한정 기다리는 것은 시장의 문제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적어도 정부가 노사 자율로 임금체계 개편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나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현 호봉임금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노사도 잘 알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회적 대화와 국민적 공론화를 시도함으로써 노사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제도적 여지를 만드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상희 한국공학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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