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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김윤종]‘캡틴 우크라이나’, 무엇이 국민에게 최선인가

입력 2022-06-17 03:00업데이트 2022-06-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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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 항전’ 젤렌스키 리더십 각광
희생자 줄이는 방법도 찾을 때
김윤종 파리 특파원
10일 오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마린스키 공원(면적 14만6000m²)은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공원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니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소총을 든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 공원을 통과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거주하며 집무를 보는 마린스키궁이 나오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만큼 평가가 순식간에 180도 달라진 국가 정상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코미디언이던 그는 2015년 방영된 TV 드라마에서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교사 역으로 인기를 얻은 뒤 정계에 입문해 정치 혁신을 내세워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집권 후 정부 요직을 TV 드라마 감독 같은 과거 동료로 채우면서 ‘아마추어 대통령이 나라를 망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러시아가 침공하기 직전인 올 1월 그의 지지율은 20%대에 불과했다.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 지지율은 90%대다. 이 같은 지지율 반전은 올 2월 24일 러시아군이 전면 침공한 그날부터 시작됐다. 러시아군 특수부대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마린스키궁을 급습했다. 미국은 “폴란드로 옮겨 망명 정부를 세우고 저항하라”며 대피를 권유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탈출 차량이 아니라 탄약을 달라”며 거부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그의 의지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결집시켰다.

10일 만난 키이우 시민들은 그를 미국 마블 슈퍼히어로에 빗대 ‘캡틴 우크라이나’라고 불렀다. 각국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설득하고 호소하는 모습에 국제사회는 ‘현대판 처칠’이라며 칭송했다. 기자도 그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집단학살’을 자행한 키이우 외곽 소도시 부차와 이르핀을 취재하면서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민간인 시신 150여 구가 암매장된 부차 교회 뒷마당에서 만난 갈리나 씨는 “러시아군 총격을 받아 남편과 친구의 여섯 살, 열 살 자녀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지난주 나흘간 방문한 키이우 외곽 지역 민간인 사망자는 1100명이 넘었다. 결사 항전 리더십은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리더십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 “2014년 강제병합된 크림반도까지 되찾겠다”고 밝혔다. 과거 러시아가 무력으로 앗아간 영토까지 되찾기 위해 계속 싸우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전쟁 중인 대통령이 영토를 포기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 향후 휴전협상에서 지렛대로 삼기 위해 포석을 까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분이 전부는 아닐 수 있다. 이르핀 시민 세니아 씨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민을 힘들지 않게 하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실적으로 10∼20년 걸린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계획을 2019년 헌법에 규정하는 개헌을 단행했다. 러시아는 이를 꼬투리 잡아 침공 명분으로 삼았다. 물론 그렇다고 전쟁 책임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전쟁 주범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쟁의 화마에 오늘도 희생되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묻는다. “무엇이 국민에게 최선인가요.” 비단 그에게만 요구되는 리더십은 아닐 터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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