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용]안갯속 안전운임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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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경남 창원의 한 터널. 적재중량 5t짜리 화물차가 인화물질 8t을 싣고 질주하고 있었다. 이 차는 시속 118km로 달리다가 브레이크가 터지는 바람에 터널 출구 근처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폭발했다. 3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화물차의 고질적인 과속·과적의 이면에는 낮은 운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결과 컨테이너와 시멘트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 차주에 한해 2020년부터 3년간 최저 운임을 고시하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수출용 컨테이너를 왕복 200km 운반하는 차주가 받는 운임은 2020년 말 29만9096원에서 올 4월 38만6300원으로 올랐다. 보험료, 지입료, 유가 상승분이 원가에 그때그때 반영된 덕분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화물연대가 올해 말 일몰이 도래하는 안전운임제 상설화를 주장하며 어제 총파업에 돌입했다. 유가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화물업계의 최저임금인 안전운임이 폐지되면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화주인 기업은 안전운임제를 상시 운영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시멘트 화물 차주의 순수입은 424만 원으로 2년 전의 2배로 뛰었고 일하는 시간은 11%가량 감소했다. 반면 2020년의 과속 단속 건수는 전년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일하는 사람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나아진 반면 화물차의 안전도가 개선됐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안전운임제를 3년 일몰제로 도입한 것은 물류업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일단 한번 제도를 운영해보자는 취지였다. 화물 차주만 생각한다면 운임을 많이 올릴수록 좋겠지만 기업은 물류비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비용 급증으로 외부와 운송계약을 하느니 기업이 직접 화물차를 구입해야 할 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안전운임제가 임금 인상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택배, 전세버스 업계까지 같은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운임제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채 소비자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화물연대 파업은 안전운임제 논란의 해법이 될 수 없다. 고물가에 갇힌 한국 경제에 철강 대란, 시멘트 대란으로 고통을 더할 뿐이다. 노사정은 안전운임제 실험의 결과를 테이블에 올린 뒤 차주와 기업, 소비자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떼쓰기’ 식으로 제도가 결정돼선 안 된다. 호주는 과거 도로안전운임제를 중단하면서 “안전을, 운임 법제화로 해결하려 들지 말라”며 운전 자격을 강화하고 운전자의 연령대를 낮추는 것을 대안으로 들었다. 우리 논의 과정에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안전운임제#안갯속#화물연대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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