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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음악가 방준석을 떠나보내며[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입력 2022-03-30 03:00업데이트 2022-03-30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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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유앤미 블루 ‘세상 저편에 선 너’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1993년의 서울 송파구 마천을 생각한다. 마천은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외국 음악가의 내한공연을 보기 위해 올림픽공원을 찾을 때 타던 지하철이 마천 혹은 상일동행 5호선 열차였기 때문에 친숙함 정도를 갖고 있을 뿐이다. ‘유앤미 블루’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마천이 함께 떠오른다. 유앤미 블루의 음악이 만들어진 곳이 바로 마천에 있던 ‘송스튜디오’였기 때문이다.

방준석과 이승열. 어린 시절 각각 칠레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두 교포 청년은 음악을 하기 위해 모국으로 돌아와 송스튜디오와 계약했다. 스튜디오를 집 삼아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며 앨범을 만들었다. 1993년의 마천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게 외진 곳이었다. 가끔씩 답답할 때면 명동까지 나갔다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둘은 미래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994년 유앤미 블루의 첫 앨범 ‘Nothing’s Good Enough’가 나왔다. 앨범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모던 록’이라 이름 붙여진 앨범 속 음악은 1994년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앨범 제목만큼이나 낯설었다. 풀어 쓰자면, 당시 한국에선 아직 상륙하지 못하고 통용되지 않는 음악이었다. 이 앨범은 이른바 ‘저주 받은 걸작’이 되었다. 이 앨범이 가치를 인정받고 유앤미 블루란 이름이 다시 소환되는 건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후 한 장의 앨범을 더 발표했지만 성과는 역시 미미했다. 앨범의 연이은 실패는 두 친구의 사이까지도 잠시 소원하게 만들었다. 둘 사이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마천을 생각한다. 청운의 꿈을 꾸며 1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모국에서의 연이은 실패는 그들에게 큰 외로움과 고립감을 안겼을 것이다.

영원히 청년일 것 같던 방준석이 26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유앤미 블루의 실패에서 경력이 끝난 건 아니었다. 유앤미 블루 해체 뒤에 방준석은 한국에 남아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재능은 영화음악에서 꽃을 피웠다. ‘후아유’ ‘라디오스타’ ‘고고70’ ‘베테랑’ ‘사도’ ‘모가디슈’ 등 수많은 걸작의 영화음악을 남겼다. 우리는 중요한 음악가 한 명을 잃었다.

방준석을 생각하면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신인 음악가를 선발하는 ‘헬로루키’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그는 행사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어린 후배 음악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수상을 하지 못한 한 밴드의 멤버와 차가운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한참을 이야기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유족 명단에 있는 아이의 이름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가 나중에라도 이 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음악가였으며, 좋은 어른이었다는 것을 그가 알았으면 좋겠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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