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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외눈박이의 눈[이은화의 미술시간]<207>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3-24 03:00업데이트 2022-03-24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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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딜롱 르동 ‘키클롭스’, 1914년경.
외눈박이 거인이 바위산 뒤에 숨어 있고, 꽃이 핀 산비탈에는 나체의 여인이 누워 있다. 이 인상적인 그림은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말년 대표작이다.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기괴하게 큰 거인의 눈이다.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눈빛이다. 거인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르동은 인상파 화가들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처럼 일상을 포착해 그리기보다 꿈이나 잠재의식 등 화가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요정이나 괴물 또는 상상 속 인물들이 사는 꿈의 세계를 종종 그렸는데, 이 그림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클롭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키클롭스는 외눈박이 거인족이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가 키클롭스의 수령이었다. 그는 무식하고 오만불손한 데다 신들에 대한 경외심도 일절 없는 무법자였다. 하지만 심장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림에서 폴리페모스는 높은 산 뒤에 숨어서 바다의 님프 갈라테이아를 훔쳐보고 있다. 아름다운 님프는 벌거벗은 상태로 꽃으로 뒤덮인 산비탈에 잠들어 있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천하의 폴리페모스였지만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수줍은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문제는 갈라테이아가 사랑하는 대상이 그가 아니라 열여섯 살 미소년 아키스였다는 점이다. 포악한 성품이 어디 갈 리가 있을까. 갈라테이아가 아키스와 함께 있는 것을 본 폴리페모스는 격분한 나머지 바위로 아키스를 죽여 버렸다.

사랑의 정적을 해치운 외눈박이 거인은 사랑을 쟁취했을까? 천만에. 모든 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법.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향하던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아먹으려다 도리어 눈이 찔려 실명했다. 르동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이자 내면세계의 상징으로 눈을 그리곤 했다. 거인은 누구보다 큰 눈을 가졌지만 오만무도했던 탓에 눈을 잃으면서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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