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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프리츠커상 예측 무대가 된 英 건축 전시[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입력 2022-03-22 03:00업데이트 2022-03-22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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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앞마당에 설치한 건축가 프랑시스 케레의 ‘파빌리온(임시건축물)’. 부르키나파소 출신인 케레는 아프리카의 토속적 조형미를 보여준다. 이 갤러리에 파빌리온을 설치한 건축가들이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잇달아 받아 눈길을 끈다. 사진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우리는 노벨상, 국제 콩쿠르 입상, 올림픽 금메달 등등 늘 무언가에 쫓기듯 ‘세계적인 권위’에 매달린다. 한때는 해마다 노벨상 발표 즈음에 유력 수상 예상자의 집 앞에서 취재진들이 진을 치곤 했다. 예전이라면 세계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고 이해하겠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조바심에서 자유로워질 만도 한데 아직 큰 변화가 없다.

건축에서도 프리츠커상이라고 하는 하이엇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 출신 수상자가 없다 보니, 정부에서 이 상을 받도록 하겠다고 ‘건축설계 인재육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신생 건축가들의 해외연수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취지는 좋지만 기능 인력을 양성하는 것과 같은 그런 방식은 좀 어색하다. 문학도 건축도 결국은 문화의 범주에 속하는데, 그 가치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재보는 듯한 행위는 참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는 인구 2000만의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 건축가 프랑시스 케레가 선정됐다. 아프리카 대륙 출신으로도 흑인 건축가로서도 첫 수상이라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의외의 인물이 상을 받을 때 사람들이 더욱 열광하곤 하는데, 건축계의 경우도 비슷하다. 다만 수상자 후보를 예측할 때 종종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선보인 건축가들이 거론되곤 한다. 정확하게는 지난 20여 년 동안 그 갤러리 앞마당에 ‘서펜타인 파빌리온(Serpentine Pavilion)’을 설계한 건축가 중에서 프리츠커 수상자가 여러 번 나왔다. 올해 수상한 케레는 2017년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파빌리온’이란 고정적이지 않은 임시 건축물로서 전시나 박람회장 등에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개최된 두바이 엑스포 같은 국제 행사를 위해 각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임시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거대한 규모부터, 서펜타인처럼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곳에 방문객들의 휴식과 편의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규모까지 다양하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1970년 하이드 파크의 켄싱턴 가든스에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사상을 표방하며 개관했다. 1990년대 이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이 관심을 갖고 후원하면서 명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2000년에 모금 행사를 열면서 이라크 출신 건축가 고 자하 하디드에게 임시 천막 디자인을 맡긴 것이 좋은 반응을 얻자, 매년 여름 파빌리온을 세우는 것이 고정 행사가 되었다.

영국에 건물을 지어본 적이 없는 다른 나라의 건축가여야 한다는 것이 선정 원칙이라고 한다. 자하 하디드는 서울에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처럼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의 건축으로 유명한데, 이때 디자인한 파빌리온은 비교적 초기의 작업이라 그런지 얌전한 편이다. 마치 종이접기를 한 듯 몇 번 접어 올린 가벼운 천막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 프랭크 게리,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알바루 시자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속속 초대된다.

파빌리온은 대체로 일반적인 건축물에 비해 건축적이거나 구조적으로 좀 더 자유롭게 새로운 제안을 보여주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령 네덜란드의 건축그룹 MVRDV의 경우 마당이 아니라 갤러리 전체를 덮는 마치 산과 같은 형상의 과감한 구조물을 제안했는데, 신선한 시도였지만 예산상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일본 건축가 SANNA는 그들의 시그니처인 가느다란 기둥과 구름 모양의 떠다니는 얇은 지붕의 파빌리온을 선보였다.

이라크 출신 건축가 고 자하 하디드가 2000년 디자인한 서펜타인 앞마당의 야외 천막. 사진 출처 프리츠커상 홈페이지
관람객들에게 어떠한 공간적 경험을 선사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페터 춤토어의 파빌리온은 파격적인 조형 대신에 시야를 막아선 벽을 세웠다. 철판으로 된 벽에 난 좁은 입구로 들어가 어두운 좁은 통로 한편으로 비추는 빛을 따라가면, 탁 트인 마당에서 아름다운 정원과 하늘을 만나게 된다. 조형이나 재료의 실험에 집중하거나 비일상적인 경험을 제안하는 다양한 디자인을 살펴보다 보면, 이 작은 규모의 파빌리온에도 건축가들의 고유한 개성과 건축관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누구나 알 만한 대가의 작업도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 스페인이나 칠레 등 다양한 국적의 신진 건축가들도 초대받고 있는 것은 다변화된 세계 건축의 경향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2021년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건축가 수메이야 밸리가 선정됐다.

케레의 2017년 파빌리온은 철제와 목재를 사용한 단순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 낮과 밤의 대조적인 이미지 등이 아프리카라면 연상되는 토속성을 세련된 현대건축의 구조 어휘로 잘 표현했다고 느껴진다. 건축가의 고향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구심점이 되는 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라고 하며, 방문객들을 자연과 서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런던 날씨에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든 지붕으로 인해 맑은 날에는 중앙의 마당에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비가 올 때는 옥상에 모인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바닥의 배수 시스템을 통해 나가서 재활용되었다고 한다.

케레는 첫 작업으로 음식과 깨끗한 물을 얻는 것조차 힘든 오지였던 고향에 가서 현대건축의 기술과 고향의 재료를 결합해 현지인들과 직접 초등학교를 지었다. 자신의 뿌리가 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스럽게 ‘지금 여기’의 건축을 고민해 본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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