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잘사는 한국, 무엇이 문제일까?[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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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구매력 기준 1인당 소득 日 추월했지만
소득·자산 격차 커지며 더 불평등한 사회
자산 수익에 정당 과세하고 일자리 늘려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경제학자이다 보니 한국에 오면 일본 경제와 비교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최근에는 한국의 1인당 소득이 일본보다 높다는데 사실인가 묻는 사람이 많다. 좋으면서도 정말 사실일까 의구심을 갖는데,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은 국가 간 1인당 소득을 비교할 때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인의 소득이 1000달러이고 일본인의 소득이 1500달러인데, 일본의 물가가 한국보다 1.5배 비싸면 두 사람의 구매력은 동일하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20년 구매력 기준 1인당 소득을 보면 한국이 4만2381달러, 일본이 4만232달러로 한국인의 평균 소득이 일본인보다 5%가량 높다. 즉,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5% 정도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소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1992년에는 일본의 1인당 소득이 한국의 두 배가 넘었다. 미국 대학에는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라는 취지로 외국인 유학생과 미국인 학생을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일본인 친구에게는 금방 연락이 왔지만 내게는 도통 연락이 없었다. 한국어도 한국인도 인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마 일본인보다 한국인을 더 많이 찾을 것이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반면에 한국의 자살률이 일본보다 높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묻는 질문이지만 이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자살률은 실업률이 치솟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최악을 기록한 후 2010년대 중반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최악이 된 후 조금 진정되었지만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2020년 인구 10만 명당 일본의 자살률은 16.7명인 데 비해 한국의 자살률은 25.7명이나 된다.

일본보다 잘사는데 자살률은 왜 높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과학적 분석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 빈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고용률이 낮아지고 기업 도산 건수가 증가할 때 자살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는 상대적 빈곤이 심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1992년의 한국인보다 2022년의 한국인은 경제적으로 훨씬 더 풍요롭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은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악화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소득과 자산은 빠르게 증가하는데 내 소득과 자산이 그대로이면 우리는 더 큰 상대적 빈곤을 경험한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대기업 직원들은 두둑한 연말 보너스를 챙겼다고 한다. 직장을 잃었거나 사업장을 잃은 사람들은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경제적 위기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소득과 자산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지금 한국은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 있다.

소득 불평등을 계측하는 다수의 지표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임을 보여준다. 자산 격차는 소득 격차보다 더 계측하기가 어려워서 국가 간 비교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부동산 가격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던 일본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한국에서 자산 격차가 더 많이 벌어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낮은 고용률 역시 소득 양극화의 원인이 된다.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7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일본보다 고용률이 낮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70대 고용률이 높은 것은 한국의 노년층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특히 높은 나라이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야 하고, 부동산을 비롯한 모든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정당한 세금이 매겨져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간은 줄이고 일자리는 늘려서 무직자를 줄여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적절한 지원 역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보다 못살지만 한국보다 양극화는 덜한 일본에서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소신표명 연설에서 “협동과 유대의 정신”을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협력을 호소했다. 그의 연설을 들으며 ‘협동과 유대의 정신’은 우리 한국의 전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일본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된 한국, 새해부터는 경제 불평등도 더 개선되기를 빈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일본#한국#구매력#소득#자산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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