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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또 등장한 ‘오천피’ 공약, 불확실성 제거가 정치 역할

입력 2022-01-04 03:00업데이트 2022-01-0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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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열 받는다, 울고 싶다.” 요즘 주식 관련 유튜브나 인터넷 카페를 보면 이런 우울한 말들이 넘쳐난다. 지난해 7월 3,305로 사상 최고가를 찍었던 코스피가 3,000 선에 안착하지 못하고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스피 상승률은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19위로 꼴찌 수준이다. 2020년 1위에서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성적에 문재인 대통령은 입을 닫았다. 1년 전 신년사에서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이 밝다”고 자랑한 것과 딴판이다.

대통령이 외면하는 사이 여야 대선 후보들이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겠다며 앞다퉈 공약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새해 증시 개장식에도 나란히 참석했다. 대선 후보가 증시 개장식을 찾은 건 처음이다.

이 후보의 공약은 ‘코스피 5,000 달성’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주가 조작을 엄벌하고 불법 이익을 환수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는 ‘선진 주식시장’을 만들겠다며 맞불을 놨다. 증권거래세를 완전히 폐지하고 대주주 등 내부자의 무제한 지분 매도를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두 사람 모두 1000만 명 넘는 ‘개미 투자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인에게 불리한 제도를 손봐 시장을 띄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막상 증권가에서는 이들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선 때마다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후보들의 구애와 주가 달성 공약이 반복된 탓이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우증권 본사를 방문해 “내년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다. 임기 5년 내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라고 자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며 “5년 내 코스피 3,000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를 연 건 지난해 1월이다. 2,000에서 3,000이 되는 데 13년 5개월이 걸렸다.

주식시장은 실물경제의 거울이다. 지난해 한국 증시가 용두사미로 끝난 건 국내 주력 업종인 반도체의 업황 둔화 우려, 인플레이션 위기, 글로벌 공급망 마비, 미국의 긴축 움직임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새해에도 이런 불안 요인이 계속되면서 경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이 올해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 금융시장에 어떤 파장이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삼천피를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데도 여야 대선 주자들은 경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위기를 극복할 비전과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 위기를 가중시킬 ‘돈 풀기’ 선심 공약이나 ‘오천피’(코스피 5,000) 같은 사탕발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주가는 경제의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 삼천피를 사천피, 오천피로 끌어올리려면 경제 기초체력을 탄탄히 하고 기업의 족쇄를 걷어내는 게 먼저가 돼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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