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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대법도 ‘통상임금 신의칙 판결’ 엇갈려…일관된 기준 재정립해야”[인사이드&인사이트/김희성]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21-12-29 03:00업데이트 2021-12-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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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통상임금 소송 혼란
기아 노조원들이 지난해 8월 20일 통상임금 소송 최종 판결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기아 근로자 3000여 명이 “정기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미지급 법정수당을 추가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 판결을 내기 한 달 전 한국GM과 쌍용자동차 근로자들이 제기한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사측의 신의칙 위배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동아일보DB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6일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재판에서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법정수당의 차액을 지급해 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근로자들의 주장을 배척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차액은 2009년 12월부터 2014년 5월까지의 통상임금 소급분으로 최대 6300억 원으로 추정된다.

9년 가까이 이어진 통상임금 소송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지만 이번 현대중공업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추가 법정수당(통상임금 소급분) 청구 인정 여부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신의칙 적용’(신의칙 적용 제한 법리를 명시하여)을 이번에는 아예 배제하는 취지의 판시를 했기 때문이다.

2013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모호했던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과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추가 법정수당에 대한 청구권을 인정할지는 별도의 주요 쟁점으로 다투어졌다. 통상임금에 대한 노사 합의가 이미 이뤄진 상황이었지만 이후 해당 합의가 강행법규에 위반되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노사 양측이 합의할 당시에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추가 법정수당을 일방 당사자가 청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되는지가 핵심 이슈가 됐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는 ‘원칙적인 일반 요건’과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을 제시했다. 이후 일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은 대체로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로움’과 관련해 경영상의 지표를 중심으로 신의칙 적용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인정된(신의칙이 부정된) 사건들에서는 오히려 근로자와 사용자 간 오랜 공생 및 협력관계가 파괴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사용자 측의 경우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게 됨으로써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내지 기업 존립의 위태로움을 겪고 있다.

신의칙 인정 여부에 관한 법원 판단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금호타이어와 현대중공업 사건 등에서는 동일한 경영상 지표를 근거로 삼았음에도 사건을 바라보는 법관의 판단에 따라 1, 2, 3심에서 극명하게 상충하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2019년 시영운수 사건 대법원 판결의 경우 6년 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명시하지 않았던 표현이 추가되기도 했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더해졌다. 이로써 신의칙 원칙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축소됐다. 이 판결은 또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사용자 입장에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도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취지를 내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나온 한진중공업, 예산교통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와 동일한 취지의 판시가 나왔다.

지난해 나온 판결들은 제각각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아시아나항공과 7월 한국GM, 쌍용자동차 사건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을 인정해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배척했다. 이 세 판결에서는 전년도의 시영운수 사건 판결이 제시한 신의칙 적용 제한 법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이후의 기아, 금호타이어 사건 판결에서는 다시 그 제한 법리가 나타나 신의칙 적용이 부정됐다.

이번 현대중공업 사건은 앞으로 대법원이 신의칙 적용에 대한 어떤 방향성을 가질지 가늠하는 잣대로서 주목을 받아왔다. 대법원은 결국 사실상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을 배제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은 듯하다. 대법원은 시영운수 사건 판결에서의 제한 법리는 물론 다음과 같은 문구를 덧붙여 신의칙 적용을 사실상 봉쇄했다.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하였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기존 법리를 전제로 신의칙 판단 기준을 구체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신의칙 적용을 통해 사용자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던 취지를 전원합의체도 아닌 소부가 사실상 폐기 내지 변경한 변칙적 판결이라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대법원 판시처럼 경영자가 경영 악화 가능성을 매번 정확히 예견하고 극복 가능성을 진단하는 게 현실에서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든다. 변화무쌍한 기업 환경 아래에서 사용자가 경영 상황 악화를 정확히 예견하고, 경영상 어려움의 극복 가능성을 진단하도록 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최근 대법원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주된 원인은 법관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강행법규 위반 시에 신의칙이 적용되기 위한 판단 기준’을 잘못 이해했거나 경솔하게 적용하고 있어서다. 강행법규 위반 시 신의칙 적용 가부를 판단할 때 ‘신의칙의 본질’을 판단 규준으로 삼기보다는 우연성을 본질로 하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존립의 위태로움’ 야기 여부를 판단 규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합의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는 권리 행사를 허용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추어 용인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신의칙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시영운수 사건 판결이나 이번 현대중공업 사건 판결 모두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를 사후적·우연적 요소들에 대한 예측에서 찾고 있다.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할 경우 매출액이나 총인건비에서 차지하게 될 비중이나 그 추가 지급 액수가 재무상태표상 당기순이익 내지 이익잉여금을 고려한다면 변제가 가능한 정도라는 식이다. 당사자 간 진정한 합의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훼손되는지에 대한, 신의칙의 본질적인 부분에 관한 판단은 없다. 신의칙이 주된 쟁점인 사건의 판단 기준이 정당한 신뢰 위반 여부가 아닌 것이다. 그 대신 신뢰 위반이 초래할 수도 있는 사후적·우연적 사정인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여부와 기업 경영 책임의 근로자 전가 여부가 쟁점인 것처럼 변경돼 안타깝다.

현대중공업 사건 판결은 시영운수 사건 판결보다 신의칙 적용 가능성을 더 극단적으로 좁혔다.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한 회사를 제외하고는 신의칙 주장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했던 ‘신의칙이 적용되기 위한 일반 요건과 특별한 사정’을 올바르고 정당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에 따라 명시적이고 확정적이며 일관된 법률적 판단 규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것이 최근 각종 통상임금 소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혼란을 종식시켜 법적 안정성을 제고하는 길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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