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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카드 수수료·통신비까지 정부가 정해주는 나라

입력 2021-11-23 03:00업데이트 2021-11-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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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통신비 인하는 선거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기본료 폐지, 한중일 로밍요금 폐지 등을 담은 통신비 절감 7대 정책을 내놨다. 기본료 폐지가 위헌 논란에 휘말리자 그 대신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했다. 정부가 사실상 적정 요금을 정해주겠다는 것인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발에 부딪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먼저 통신비 인하 공약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 안심 데이터’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기본 데이터를 모두 소진한 뒤에도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와 전자결제 서비스 등을 전 국민이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겠다고도 했다. 벌써부터 통신업계에선 “이럴 거면 공기업이던 통신사를 왜 민영화했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도 요즘 “이럴 거면 한국카드공사를 만드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통신요금과 더불어 지난 20여 년간 선거 때마다 등장한 카드 수수료 인하를 두고서다. 통신비와 다른 게 있다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정부가 적정 수수료를 정하도록 일찌감치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못 박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3년마다 카드사의 적격비용(원가)을 계산해 가맹점 수수료를 결정한다. 카드사들이 관리비나 마케팅 비용을 아껴 가며 허리띠를 졸라매면 이것이 원가에 반영돼 3년 뒤 수수료 인하로 이어지는 구조다. 원포인트 개편과 3년마다 돌아오는 수수료 재산정으로 카드 수수료율은 2007년 이후 13차례나 인하됐다. 이로 인해 2007년 4.5%였던 카드 수수료율은 현재 최대 2.3%로 반 토막 났다. 또 전체 신용카드 가맹점(294만8000개)의 96%는 우대 수수료(0.8∼1.6%)를 내고 있다. 연매출 3억 원이 안 되는 영세가맹점 223만 곳은 세액공제까지 더하면 카드 수수료로 낸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는 실정이다.

이르면 이달 말 수수료 재산정 발표를 앞둔 당정은 이번에도 추가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생계를 위협받는 자영업자를 위한다는 취지에서다. 방역 과정에서 자영업의 희생과 양보가 컸던 만큼 이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 인하로 가맹점에 돌아가는 혜택은 한 달에 몇만 원에 불과하다. 카드사 팔 비틀기로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가 카드 수수료 상한선을 규제하는 국가는 있지만 모든 가맹점의 수수료를 직접 정해주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민간 통신사의 요금제를 정부가 결정한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정부가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들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임대료 인상 폭을 5% 이내로 제한한 임대차법이 전·월세 대란을 불러온 게 대표적이다. 반복된 카드 수수료 인하로 소비자들이 누리던 카드 포인트, 서비스 혜택도 사라졌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통신비, 카드 수수료 인하 외에도 또 어떤 반시장적 공약이 등장할지 걱정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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