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일본인들의 사죄 받아들여야 日 우익 이긴다[동아광장/박상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입력 2021-10-16 03:00수정 2021-10-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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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정치인 많은 日 기시다 내각
당분간 韓日관계 개선 기대 어려워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관계개선 경험
日우익에 또 사죄 요구하며 대립할 필요 없어
사회 우경화 속 양심적 일본인들이 희망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10월 4일 일본에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출범했다. 외상을 지내기도 한 기시다 자신은 극우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임명한 장관과 자민당 고위직을 보면 당분간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민당의 가장 중요한 요직이라고 하는 당3역 중 하나인 정무조사회장(통칭 정조회장)에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는 일본에서 유명한 극우 정치인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3위에 머문 인물이다. 관방장관 마쓰노 히로카즈, 방위상 기시 노부오, 경제산업상 하기우다 고이치 역시 극우로 알려져 있다. 기시 노부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외가인 기시 집안에 양자로 입적해서 형과 성이 다르다. 그들은 2012년 미국 뉴저지주의 한 지방신문에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들은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던 무라야마 담화나 위안소 설치에 군이 관여하였음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에 불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인들에게는 다행히도 그들에게는 그 두 담화를 부정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일본의 역대 정부는 그 두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국제적으로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 그 자신은 외상 시절에 한 기자회견에서 “역대 일본 정부는 일본이 한때 아시아 제국 국민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왔고, 재차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베 전 총리 역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누차에 걸쳐 분명히 했다. 그들은 진심이었을까? 기시다 총리의 경우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아베는 아마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다시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할 필요는 없다. 진심으로 사죄한 총리들이 있었고, 일본의 역대 총리는 진심이든 아니든 그 사죄를 공식적으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처럼 과거사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정치인에게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는지 물으면 된다. 그들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했을 때 전 세계에서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를 잘 알고 있다.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은 사죄의 계승이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진심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전 생애에 걸친 언행이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이 배출한 세 명의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의 사죄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퇴임 후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자민당 출신 총리 중에서는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사죄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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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의 오부치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끼친 손해와 고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음을 밝히고 전후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그가 어떤 마음과 어떤 노력으로 그 담화를 발표했는지를 모르는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외면당했다. 그 담화가 발표되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한국은 그를 일본의 양심으로 칭송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일본의 사죄는 사죄로 생명을 갖게 되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일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이후 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오부치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를 김대중 대통령이 진정으로 받아들인 덕이다.

일본 사회가 점점 우경화되면서 우익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있다. 동시에 일본의 양심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도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는 우익 정치인들에게 또다시 사죄를 요구하며 대립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양심적 일본인들의 사죄를 계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양심적 일본인들의 진심 어린 사죄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우익을 이기는 방법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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