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차이잉원과 시진핑의 매력자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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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7일 수도 타이베이의 집무실에서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집권 자유당 소속으로 2013∼2015년 총리를 지낸 애벗은 현직 때도 대만을 방문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대만을 찾았다. 차이잉원 총통 트위터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7일 수도 타이베이의 집무실에서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집권 자유당 소속으로 2013∼2015년 총리를 지낸 애벗은 현직 때도 대만을 방문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대만을 찾았다. 차이잉원 총통 트위터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영국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은 2011년 아름다움이 곧 경쟁력이라는 ‘매력 자본(erotic capital)’ 개념을 주창해 반향을 일으켰다. 훌륭한 외모를 넘어 유머 감각,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기술, 긍정적 태도, 활력 등의 집합체에 가깝다. 강압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 연마한 매력을 통해 상대방의 호감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금방이라도 침공할 듯 거세게 압박하는 중국 앞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보여준 행보와 언사는 국가 지도자가 지녀야 할 매력 자본의 교과서처럼 보인다. 그는 5일 미 외교매체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현 양안 갈등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규정했다. 대만의 존립은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권위주의 세력이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것에 대항하는 대만의 노력을 ‘선(善)을 위한 힘(a force for good)’으로 평했다.

10일 건국 110주년 연설에서는 대만이 더 이상 ‘고아’가 아니며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와 함께 국제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중국을 의식해 각국이 대만과 연을 끊었지만 이제 미국 일본 호주 유럽연합(EU) 등에서 대만이 환영받고 있으며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대만을 위해 일어섰다고 했다.

그의 기고와 연설은 어렵지 않은 말인데도 진솔하고 울림이 있다. 품격 있는 지도자라면 갖춰야 할 태도 즉 대의명분과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국내 선거 때도 늘 ‘민주주의는 단지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해왔다.

2016년 첫 집권 때만 해도 차이는 집권 민진당이 배출한 첫 번째 총통 천수이볜(陳水扁)에 비해 대중국 노선이 온건하다는 평을 들었다. 천은 중국 공산당이나 공산당에 패해 대만에 온 후 수십 년간 철권통치를 한 국민당이나 대만인을 핍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며 대만 독립을 주창했다. 차이는 현실을 인정하고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런 그를 아시아를 넘어 자유세계의 대표 지도자 겸 반중 투사로 만들어준 건 역설적으로 중국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서서히 종속시킬 수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대만을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기세로 몰아붙이니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LSE)를 졸업한 차이는 서구 매체에 유려한 영어로 ‘대만이 무너지면 세계 민주주의가 몰락한다’고 호소했다. 중국은 허구한 날 대만해협에 전투기와 함대를 보냈고 ‘피’를 운운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월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를 얕보고 억압하고 노예로 만들려는 외부 세력은 14억 인민이 피와 살로 쌓은 강철 장성에 머리를 박아 피를 흘릴 것”이라고 했다. 둘 중 누구에게 매력을 느낄지, 진짜 다른 나라를 얕보고 억압한 세력이 어떤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국제 정세에서도 여론전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차이의 매력 자본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7일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 알랭 리샤르 전 프랑스 국방장관이 이끄는 프랑스 의회대표단은 각각 타이베이에서 차이와 만나 모두 대만을 ‘국가’(country)로 칭했다. 특히 현직 때도 대만을 방문한 적 없던 애벗은 전 세계 민주 국가가 중국에 맞서 대만을 도와야 한다며 “대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지지한다”고 했다. 발언 하나하나가 중국이 발끈할 내용들로 채워졌다.

미국 여론도 호의적이다. 1994년부터 매년 미 외교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싱크탱크 시카고카운슬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군을 동원해야 한다’는 미국인의 비율이 올해 가장 높은 52%를 기록했다. 미국의 중동 최대 맹방 이스라엘(53%)과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은 최근 미 해병대와 특수부대가 대만에서 대만군 훈련을 도왔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문명국이라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통치를 해야 하고, 지도자는 품위 있는 언어를 써야 하며, 일단 외교 원칙을 정했으면 그 원칙을 공유하는 우군을 도처에 만들어야 해당 국가와 그 지도자 모두 존속할 수 있음을 차이가 보여준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차이잉원#시진핑#매력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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